성지곡聖知谷 수원지水源池로 가족 나들이를 다녀왔다. 초딩시절 12번의 소풍 중 적어도 10번은 다녀온 곳이다. 강산이 두 번 변하고 한 번 더 바뀔만큼 세월이 흐른 뒤, 아이들 손을 잡고 다시 온 성지곡 수원지. 수원지 주변 산책로가 잘 정비된 것을 빼고는 변한 것이 거의 없다. 세월의 흐름을 비껴간 듯 하다. 위키백과에 의하면 성지곡 수원지는 대한제국 융희隆熙 3년(1909)에 완공되었다. 수원지의 모양이 한반도의 지형을 닮았다고 하는데,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지는 못 하였다. 1985년 수원지로서의 사명을 다하였다. 현재 대한민국 등록문화재 367호로 지정되어 있다. 성지곡 수원지는 동천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 성지곡 수원지 ⓒ 빈배
폭염에 지친 이들이 삼삼오오 나무그늘에 앉아서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호수 어디에선가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했다. 도심 한복판에, 비록 인공일지언정 이런 큰 호수가 있다는 것은, 현재로서는 참 좋은 일이다.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1906년에 공사를 시작할 때, 저 호수 아래 어디 쯤에 살던 사람들은 강제로 쫓겨났겠지? 다수의 편의와 복지를 위해서 소수인 너희들은 기꺼이 양보하고 희생하라고 강요했겠지? 그래서 수몰되지 않는 근처 어딘가로 쫓겨가 힘든 삶을 이어가야 했을 터이고.'
고등학교 2학년 때던가? 내가 살고 있던 동내는 하천부지에 자리잡고 있었다. 시에서 도로를 내는 바람에 쫓겨났다. 쥐꼬리만한 보상비와 이주비를 받고서……. 동내 주민들은 이리저리 흩어졌고, 몇몇은 조그만 임대 아파트로 옮겨갔다. 그래서인지 수원지나 댐을 보면 자꾸만 그 아래 어딘가에 있었을 수몰된 마을과 가난한 주민들이 떠오른다.
불경기를 해소하기 위해 물과 관련된 많은 사업이 벌어져 왔다.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한 미국의 테네시강유역 개발사업이 그랬고, 한국의 4대강 개발사업도 그런 차원이다. 불경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댐을 만들고 전쟁을 해본들, 몇십 년을 못가서 다시 불경기가 찾아왔다. 불경기에 득을 본 이들은 건설자본과 소수의 정치세력 뿐이었다. 그런 쪽에서 보면 '위기가 기회'라는 말은 상당히 불온하게까지 들리기도 한다.
사람도 성장을 하다가 때가 되면 멈추고, 나무도 풀도 성장을 하다가 때가 되면 멈춘다. 자연을 보면 성장을 하다가 어느 때가 되면 멈추는 것이 순리다. 순리를 벗어나면? 멸종한다. 성장을 멈추지 못하고 끊임없이 커져만 갔던 공룡처럼. 그런데 경제는 무엇이란 말인가? 경제는 항상 성장해야만 하는가? 성장하지 못하면 가난한 산골 마을을 물 속에 묻어서라도 경기를 부양해야 하는가? 불경기의 시작은 언제나 지나치게 과열된 '돈 장난' 때문이었다. 대공황 때도 그랬고, 최근의 리먼 사태 때도 그랬다. 경제는 끊임없이 성장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은 누가 만들어서 우리에게 입력한 것일까? 그 강박관념이 오히려 경제를 더 망치는 것이 아닐까?
불경기로 삶이 힘들어지면, 아껴쓰고 나누어쓰며 어려움을 해쳐나가는 것이 더 현명한 처사라 생각한다. 성장하기 싫어하는 경제를, 혹은 성장할 여건이 안되는 경제를, 삽질로 총질로 강제로 성장시키면, 골병이 드는 것은 가난한 서민과 말없는 자연이다. 그것이 우리의 과거가 아니었던가? 또 그러자고? 나는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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