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여름 태풍 프라피룬이 몰아쳤다. 순간 최대 풍속이 58.3미터나 되는, 우리나라 기상 관측 이래 가장 강한 바람이 불어왔다. 고흥산 영감은 15미터가 넘는 파도가 치는 가거도 앞바다로 3톤 목선 해두호를 끌고 나갔다. 고노인은 이런 파도라면 배를 방파제 옆으로 끌어다 놓아도 부서질 것이고, 물위에 떠 있으면 배가 부서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고노인은 파도가 몰려오면 정면으로 배를 몰고 들어갔다. 정면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한순간에 배가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었다. 파도가 몰아치면 배는 하늘로 솟구쳤다가 다시 수직으로 떨어지곤 했다. 그렇게 10시간 가까이를 파도와 싸웠다. 그러는 사이, 파도는 방파제를 무너뜨리고 육지로 피신시킨 삼 십여 척의 배들을 부수어버렸다. 40톤급 배 두 척도 들어 내동댕이친 엄청난 파도였다. 저녁 무렵 태풍은 북쪽으로 방향을 틀며 가거도 앞바다를 빠져 나갔고, 고노인은 배를 항구 쪽으로 몰고 왔다.(주석1)
항구에 도착한 고노인의 이빨은 2개를 빼고 모두 금이 가 있었다고 한다. 큰 파도를 넘을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이를 꽉 깨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2011년 3월 일본에서 대지진이 일어났다. 거대한 쓰나미가 발생했고, 바다에서 조업을 하던 어부들은 긴급히 대피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어부들은 이리저리 신속히 대피했는데, 어떤 어부들은 육지로 대피하지 않고 오히려 수심이 깊은 바다로 나갔다. 그곳은 해일이 높지 않아 항구 쪽으로 가는 것보다 오히려 더 안전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엄청난 쓰나미는 항구를 덮치고 마을의 흔적까지 지워버렸다. 항구로 피한 배들은 부서지고 장난감처럼 나뒹굴었지만 먼바다로 나간 어부들은 안전했다.(주석2)
두 사람의 예술가가 완전한 평화를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 첫째 예술가는 화폭에 잔잔하고 조그마한 호수와 그 안에서 한가로이 배를 타고 있는 소년을 그렸고, 다른 사람은 폭포의 장관을 그렸다. 소용돌이치는 물이 튀어나오는 가장자리에는 한 마리의 새가 집을 짓고 평온하게 알을 품고 있었다. 여기서 그 새는 약탈하는 해적으로부터 안전했고, 용솟음치는 폭포가 방패가 되기도 했으며, 또 그것에 의해 보호되기도 했다. 진실한 평화는 시련 속의 침착함에 서려 있는 것이다.(주석3)
미래는 불투명하다. 그래서 두렵다. 한 통계에 따르면 프랑스 사람의 70%는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이라고 다를 건 없다. 가장 두려운 것은 두려운 대상이 아니라, 두려워하는 마음 그 자체라고 했다. 인간이 어떤 수를 쓰던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유일하게 확실한 것은, 두려움과 맞서는 순간, 두려운 마음을 떨쳐낼 수 있다는 것이다. 거대한 파도 속으로 배를 몰고 간 한국과 일본 어부들의 행동은 단순한 치기가 아니었다. 오랜 시간의 경험, 남다른 통찰력, 그리고 과감한 결단이 어우러진 처사였다. 진정한 평화는 가만히 앉아서 얻을 수 없다.
(주석1) 도종환,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 205∼206pp.
(주석2) 박종하, 『틀을 깨라』 4p.
(주석3) 이외수, 『코끼리에게 날개 달아주기』, 307p.
11월 2주: 읽은 책, 읽다가 만 책 (0) | 2012.11.12 |
---|---|
독서의 해악 (0) | 2012.11.08 |
11월 1주: 읽은 책, 읽다 만 책, 읽고 있는 책 (0) | 2012.11.04 |
10월 4주: 읽은 책, 읽다가 만 책, 읽고 있는 책 (0) | 2012.10.28 |
내 다시는 책 안 빌려준다 (0) | 2012.10.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