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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질이 남긴 것

잡동사니

by 빈배93 2013. 3. 2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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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말, 장인어른의 주말 텃밭에 다녀왔다. 내게 주어진 임무는 겨우내 언 땅을 갈아서 이랑을 만들고 그 위에 검은 비닐을 덮어씌우는 것이었다. 처가에서 텃밭으로 가는 길에 자랑스럽게 말했다. “군에 있을 때 대민 봉사를 자주 나갔는데, 7천 평이 넘는 밭을 네 명이서 한 나절 만에 갈고 비닐을 덮은 적이 있어요.”  그 말이 뒤에 가져올 파급효과를 당시에는 전혀 짐작도 못한 채.

 

   텃밭에 도착하니 예상 밖에 땅은 아주 부드러웠고, 잡초도 거의 없었다. 처가 식구들끼리 설왕설래 끝에 다섯 이랑에는 호박 고구마를, 다섯 이랑에는 부침용으로 적합한 고구마를 심기로 했다. 삽질을 해본 것이 언제였던가? 하지만 자신은 만만했다. 온 힘을 다해 삽질을 하고, 몸이 힘겨워할 때 거기서 쉬는 게 아니라, 다시 좀 더 힘을 내어서 삽질을 해대었을 때 오는 일종의 무아지경. 그것이 그리웠고, 그것을 기대하며, 행동으로 옮겼다. 예상대로 몸이 힘들다고 신호를 보내오고, 더 힘을 내어서 일을 했다. 그런데 웬걸? 그 시절 맛봤던 무아지경은 오질 않고, 몸은 힘들다고 아우성만 치는 것이 아닌가? 이게 아니다 싶어 그제서야 살살했지만, 이미 몸은 괴로움에 떨고 있었다.

 

   작업이 끝나고, 근사한 고기 집에 가서 좋은 안주를 곁에 두고 소주를 마셨다. 역시나 과음. 집에 돌아와 잠이 들었는데, 으슬으슬 춥고 뼈마디가 쑤셔서 일어나 시계를 보니, 새벽 2시. 이러다 진짜 고생하겠다 싶어, 간단히 약을 먹고 다시 잠을 청했다. 아침이 되면 멀쩡할 줄 알았던 몸이, 더 심하게 이상신호를 보내왔다. 그렇게 하루를 고생하며 겨우 안정을 되찾았다 싶어, 다음날 배드민턴을  격렬하게 쳤다. 그런데 이게 또 웬일? 저녁 무렵이 되자, 전날의 증상이 다시 엄습하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병원에 가서, 주사를 2대나 맞고, 약을 먹고, 일찍 이부자리를 펴고 누워야만 했다. 남겨진 아이들은 온전히 부모님의 몫이 되었고. 학생들 자습지도 하고 늦게야 퇴근한 집사람도 편히 쉬기는 어렵게 되었다.

 

   닷새 간의 민폐 끝에야 몸이 정상으로 돌아온 듯한데, 아직도 이제 괜찮다는 확신은 시기상조라는 생각. 골골대고 있는 나를 보고서, 옆자리에 앉아 있는 박 선생님 왈, “안 선생은 몸을 너무 혹사시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 그러니 몸이 견뎌나질 못하지. 살살 해!” 아! 마음은 20년 전 군바리의 팔팔함 그대로이건만, 몸은 이제 아니구나. 그 격렬했던 움직임 뒤에 오는 무아지경을 다시 맛보기에는 이젠 너무 나이가 들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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