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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우절에 받은 편지, 무서웠던 재미있는 선생님!?

학교2

by 빈배93 2013. 4. 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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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우절, 3학년 독서시간, 교실에 들어섰다. 아무런 장난도 없다. 좋다. 식상해도 너무나 식상한 장난보다는 그냥 평소처럼 있는 것이 낫다. 교탁 올려둔 뭔가가 보였다. 옥수수 수염차 한 병과 메모 한 장. 혹시 만우절 장난의 일환인가? 메모를 두 번에 걸쳐 읽는다. 장난은 아닌 것 같다.

 

   “♥ 안○○ 선생님. 안녕하세요, 선생님. ㅎㅎ 1학년 때는 복장 지도로 반에 너∼무 많이 찾아 오셔서 너무 무서운 선생님이신 줄 알았는데 2,3학년 때 독서 수업 때마다 재밌는 이야기도 많이 해주시고 ㅎㅎ 저희한테 도움 되는 이야기도 많이 해주셔서 너무 좋아요! ㅎㅎ 다른 수업 시간보다 덜 졸려요!! ㅋㅋ 책 추천도 가끔씩 해주시고! 추천해주신 걸 다 읽진 않았지만…… ㅎㅎ 읽으려고 노력해요! 선생님 덕분에 많이는 아니지만 도서관 가는 횟수도 늘고! 책도 많이 읽고 있습니당 ㅎㅎ ♥ 그리고 교문 지도 해주실 때 웃으시면서 해주셔서 너무너무!! 좋아요ㅠㅠ ♥ 저희도 웃으면서 들어갈 수 있어서요. ㅎㅎ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용. ㅎㅎ 사랑해용. ♥”

 

   딸 키우는 재미와 여고생 가르치는 재미가 비슷하다. 메모에는 하트가 총 네 개. 이름 앞에 먼저 붙여놓은 하트에서 -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누군지 알려고 하면 멋스럽지 못하다는 생각에서, 굳이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 호의적인 감정을 읽는다. 하긴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메모를 남길 리도 없다. ‘ㅎㅎ·ㅋㅋ·ㅠㅠ·!·!!’의 빈번한 사용. 유쾌하고도 머쓱한 감정을 읽는다. 메모의 주인공이 1학년 때라면 2011년인데, 그 때도 생활 지도에 열심이었단 말인가? ‘너∼무’라고 했으니 어지간히 자주도 들락거린 모양인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이들에게 재미있으면서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해주려고 조금 노력했을 뿐인데, 이렇게 받아들이고 표현해주는 학생이 있다니 감사할 따름이다. ‘다른 수업 시간보다 덜 졸린다’는 건 그래도 졸린다는 말일까? 가끔 추천해 준 책을 읽으려고 노력하는 학생이 있구나. 자기가 도서관에 자주 가고 책을 많이 읽으려 노력하게 된 것이 내 덕이라고 생각하는 학생이 있구나. 사실 여하를 떠나 흐뭇하다. 교문 지도 때 웃어주는 것. 좋은 일이다. 실상은 나의 기분 좋은 하루를 위한 것이었건만, 그게 학생들에게도 기분 좋은 일이 된다니 다행이다. 타인의 행복을 위한 노력이 나의 행복이 되는 일은 아름답지만, 나의 행복을 위한 노력이 타인의 기쁨이 되는 일도 추하지는 않다. 마지막으로 다시 하트. 하트로 시작해 하트로 끝나는 수미쌍관. 일관성 있고 강조하는 수사법. 좋다.

 

   독하고 무서웠던 1학년의 기억이, 종내에는 좋다는 인상을 강화한 것이 아닐지. 유익한 변화를 끌어내주어서 좋다는 저 말들에 얼마만큼 떳떳할 수 있을지. 마냥 좋아하기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들로 인한 흐뭇함은 사실이고, 그 말들에 일희일비하는 것이 결코 바람직한 것은 아니란 생각과, 이 모든 게 장난이 아니었을까하는 일말의 의구심과, 메모 한 장에 지나친 의미 부여란 부끄러움과, 자칫 유치한 글이 될 법하단 생각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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