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가방에 카메라, 볼펜, 메모지, 책(로마인 이야기 1권), 지갑, 전화기를 담는다. 모자는 찾아도 안 보여 가방 하나 덜렁 매고 맨머리로 집을 나선다. 목적지는 그냥 울산 방면. 버스정류장이 있는 간선도로를 따라 걷다가 힘들면 버스를 타고 돌아올 생각이다. 출발지점은 노포동 지하철 역사(1055). 장마 사이에 갠 하늘에서 햇살이 쨍쨍하다. 모자 없는 머리가 뜨겁다. 한 시간 여를 걷다보니 목이 마르다. 물을 한 병 사려고 지갑을 꺼내어 보니, 아뿔싸! 천원짜리 한 장이 없다. 갑자기 초조해졌다. 그래도 걷는다. 머리속에서는 걱정이 부푼다. <나중에 차비도 없이 어떻게 돌아올래?> 보행로가 끊어진 도로에서 결국은 발걸음을 돌린다(1155). 근처 버스정류장의 표지판을 보니 「법기 - 임기 - 입석」이 쓰여 있었고, 내가 서 있는 곳은 입석이었다. 또 망설인다. <법기까지 가봐?> 기왕에 돌린 발걸음을 다시 돌리기가 어렵다. <그래, 회동수원지길로 해서 온천장으로 넘어가자.> 얼마 못 가 입석마을 표지석이 보인다. 입석? 입석立石이겠지? 우리말로 하면 선돌. 금정구에 있는 선동도 그렇게 붙은 이름이니까. 이쪽 동네에는 선돌이 참 많았던가 보다.
길 건너편에 농협이 보인다. 들어가서 현금써비스를 받는다. 5만원. 갑자기 마음이 편안해진다. 달랑 5만원인데, 사람 마음을 이렇게 편하게 해준다. 돈이 많으면 어쩌고 저쩌고 해도 역시 최소한 쓸만큼은 있어야 편안하다. 국수 한 그릇 먹고 나니(1250),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다시 걷는다. 스포원 파크를 지나서 회동수원지를 끼고 도는 산책로로 접어든다. 점심을 먹은 탓에 졸음이 몰려 온다. 벤치에 누워서 하늘을 올려다 본다. 책을 꺼내서 몇 페이지쯤 읽는다. 녹음이 드리워진 나무 아래로 시원한 바람이 분다.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다시 걷는다. 앞서가는 노부부가 보인다. 노부부 사이의 거리는 너무 멀지도 않고 너무 가깝지도 않다. 딱 저만큼의 거리가 좋다고 느낀다.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다 찍지 않고 다시 집어 넣는다. 장마라서 수원지에는 물이 가득하다. 물 위로는 짙은 안개가 피어오른다. 수원지길이 끝나는 오륜대 마을로 접어든다. 목이 마르다. 팥빙수 파는 가게가 눈에 들어온다(1410). 시킨다. 비빈다. 퍼먹는다. 기가 막히다. 3시간을 걷고 먹는 팥빙수가 어찌 기가 막히지 않을 수 있으랴? 수원지를 벗어나 카톨릭대학교를 지나서 집에 오니(1530), 아무도 없다. 도보시간은 총 4시간 35분. 식사시간과 휴식시간을 빼도 4시간은 넉넉히 걸었다. 거리는 대략 16km 내외.
(+) 도보일자: 2013.07.06.(토) 10:30∼15:30
(+) 준비물들: 휴지, 손수건, 챙이 넓은 모자, 얼린 물통, 간식, 책, 볼펜, 메모지, 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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