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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동래읍성

잡담

by 빈배93 2014. 9. 11.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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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묘년 겨울은 추웠고 임진년 봄은 따뜻하였다. 얼어서 부풀었던 흙이 녹자 흙가 흙 사이가 벌어졌다. 그 틈으로 새싹이 피어나자 헐거워진 성벽은 군데군데 허물어졌다. 봉화가 오르고 파발이 이르자 성벽을 손질하는 손이 바빠졌다. 어여 해. 어여 해야해. 이게 우들 목숨줄이여. 성으로 들어오는 자, 산으로 들어가는 자. 성 밖 마을은 소거되었고, 시커멓게 타오르는 연기에 망연하였다. 밀려드는 왜군을 앞에 두고도 어찌 할 바가 없었다. 성벽은 구체적 질감으로 선연하였으나 유약하였고, 전의는 눈으로 볼 수 없었으나 쪼그라들었다. 싸워서 죽기는 어렵고 길 빌려 주기는 쉽다 했으면 우리가 살 수 있었을까? 저들이 살려주었을까? 한양에서는 무엇이라 했을까? 살 길은 이미 어디에도 없었다. 없는 살 길을 찾느니 있는 죽을 길을 선택할 뿐이었다. 조총 끝에서 싸리꽃 같은 붉은 빛이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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