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괴정시장을 지난다. 아스팔트 바닥 위로 비닐 장판이 깔려 있고, 장판 위로 상치며 쑥갓이며 파가 널려 있다. 그 위로 찌그러진 낡은 양산 하나가 놓여 있고, 양산 아래로 시커멓고 자글자글한 얼굴이 무표정하게 있다.
- 할매요 그래 하루 종일 있으면 얼마나 법니꺼?
- 머 그런 걸 물어쌓노?
만원 쫌 넘게 벌 때도 있고 마이 벌면 2만원 3만원 될 때도 있는데 대중이 없다.
그래 니는 얼마나 버노?
- 내사 선생이니까 월급 꼬박꼬박 나온다 아입니까.
보충 수업이라꼬 따로 있는데 그거 하면 시간당 3만원 받아예.
- 그래 니가 어리서부터 공부를 그래 열심히 해쌌더니만 잘 됐네.
누구는 시원한 에어컨 아래에서 야부리 한 시간 까고 삼만 원 벌고, 누구는 땡볕 아래서 하루 종일 행인들 발만 보며 겨우 일이만 원 번다. 네 놈의 수업이 저 할머니들의 땀과 기다림보다 열 배나 중한 것이더냐? 그렇게 노동의 가치를 환산하는 세상이 온전한 세상이더냐? 기회 비용이니 노동의 가치니 부의 분배니 하는 말은 접어두어라. 시장 좌판 앞을 지날 때면 죄스러워라. 쉽게 번다고 함부로 쓰지 마라. 돌아가신 네 놈 외할머니 속치마 속에 꼬깃꼬깃 넣어두었던 쌈짓돈도 뙤약볕 아래서 허리 못 펴고 장터에서 하염없이 기다려 버신 돈이었다. 네 놈이 받아서 과자도 사고 연필도 산 용돈이 바로 그 쌈짓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