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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 김광규, 「대장간의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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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배93 2016. 5. 16.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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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간의 유혹

- 김광규

 

제 손으로 만들지 않고

한꺼번에 싸게 사서

마구 쓰다가 

망가지면 내다 버리는

플라스틱 물건처럼 느껴질 때

나는 당장 버스에서 뛰어내리고 싶다

현대 아파트가 들어서며

홍은동 사거리에서 사라진

털보네 대장간을 찾아가고 싶다

풀무질로 이글거리는 불 속에

시우쇠처럼 나를 달구고

모루 위에서 벼리고

숫돌에 갈아

시퍼런 무쇠낫으로 바꾸고 싶다

땀 흘리며 두들겨 하나씩 만들어 낸

꼬부랑 호미가 되어

소나무 자루에서 송진을 흘리면서

대장간 벽에 걸리고 싶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온통 부끄러워지고

직지사 해우소

아득한 나락으로 떨어져 내리는

똥덩이처럼 느껴질 때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문득

어딘가에 걸려 있고 싶다

 

 

작품 해제

 

  현대 사회에서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삶을 살고 있는 자신(인간으로 확장됨)에 대한 비판과 반성을 담고 있다. 화자는 자신을 무가치한 존재로 인식하는 순간, 털보네 대장간을 떠올리면서 가치 있는 존재로 거듭나고 싶은 소망을 표출한다.

 

작품 해설

 

제 손으로 만들지 않고

한꺼번에 싸게 사서

마구 쓰다가 

망가지면 내다 버리는

플라스틱 물건처럼 느껴질 때

나는 당장 버스에서 뛰어내리고 싶다

몰개성적 삶에 대한 회의

 

  플라스틱 물건은 생활 속의 소재이자, 편의적이고 일회적이고 소모적인 속성을 가진 무가치한 존재이다. '무쇠낫'과 '호미'와 대조적 속성을 지닌 대상이다.

 

현대 아파트가 들어서며

홍은동 사거리에서 사라진

털보네 대장간을 찾아가고 싶다

사라진 대장간에 대한 그리움

 

  털보네 대장간은 전통적인 삶의 양식과 가치가 존재하는 공간으로, '현대 아파트'

와 대조적 속성을 가진 공간이다.

 

풀무질로 이글거리는 불 속에

시우쇠처럼 나를 달구고

모루 위에서 벼리고

숫돌에 갈아

시퍼런 무쇠낫으로 바꾸고 싶다

땀 흘리며 두들겨 하나씩 만들어 낸

꼬부랑 호미가 되어

소나무 자루에서 송진을 흘리면서

대장간 벽에 걸리고 싶다

진정성 있는 삶에 대한 열망

 

 

  위 시행에서는 '무쇠낫'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구체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풀무질은 풀무를 이용하여 바람을 일으키는 행위를 뜻한다. 풀무는 바람을 일으키는 도구이다.

  시우쇠는 무쇠를 불에 달궈 단단하게 만든 쇠붙이이다. '유철(柔鐵)'이라고도 한다.

  모루는  불린 쇠를 올려 놓고 두드릴 때 쓰는 쇠 받침이다.

  벼리다무디어진 연장의 날을 불에 달구어 두드려서 날카롭게 만드는 행위이다.

  무쇠낫호미는 화자가 지향하는 가치 있는 존재로 플라스틱 물건과 대조적인 속성을 지닌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온통 부끄러워지고

직지사 해우소

아득한 나락으로 떨어져 내리는

똥덩이처럼 느껴질 때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문득

어딘가에 걸려 있고 싶다

지난 삶에 대한 회한과 진정성 있는 삶에 대한 소망

 

  해우소는 '똥덩이'가 떨어져 내리는 공간이다.

  나락(那落)은 지옥을 뜻하는 불교 용어로, 벗어나기 어려운 절망적 상황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똥덩이는 하찮고 의미없는 존재로서, 플라스틱 물건과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느껴질 때/∼고 싶다'의 통사 구조가 앞뒤로 반복되는 수미상관법을 사용하였다. 이는 구조적인 안정감을 주면서 화자의 정서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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