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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혜홀혜(김해원)

단편소설

by 빈배93 2024. 1. 31.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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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레인 사고로 엄마를 잃은 나, 물난리로 가족을 잃은 이수와 이수 엄마. 멀지 않은 미래, 종이책 제작이 금지된 세상을 배경으로 존재의 흔적을 찾아가는 책도둑 나의 이야기. 

 

○ 황혜홀혜(恍兮惚兮)는 노자 《도덕경》 제21장에 나오는 구절이다. 어두운 가운데 실체가 있고, 그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사유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고 해석한다.

 

○ 이수는 우리가 책을 챙기는 거나 보존 서고에 가는 거나 결과는 같다고 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는 일은 결코 범죄가 아니라고 했다. 어차피 종이책 도서관은 다 없어질 테고, 국립중앙도서관 보존 서고는 꽉 찼을 테고, 중앙도서관 사서들이 번거롭게 전국을 누비면서 보존할 책을 찾지 않을 테니까. 우리는 머지않아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질 문화유산을 발굴하고 보존한다는 긍지를 가져야 한다고.(74)

 

○ 환경 때문에 종이책을 만들지 못하도록 법률로 금지하니까 책 좋아하는 사람들을 선동해서 종이책을 숭배하게 한 거야.(86)

 

나는 책에 영혼이 있다는 것을 믿고 싶어. 그러면 그 사람이 문장으로 남는 거잖아. 어떤 감정이 담겨 있는 문장으로, 낱말로 남는 거잖아. 글을 읽으면서 그 사람을 생각하는 거잖아. 오래오래 생각할 수 있는 거잖아. 그냥 숫자로만 세상에 남는 것보다 낫잖아. 사람들은 사망자 수를 보면서 애도하지 않아. 숫자로 표기된 죽음 앞에서 사람들은 아무 감정도 갖지 않아. 숫자는 그 사람이 조금 전까지 살아 있었던 나와 똑같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지워 버려.(91) 

 

● 그러셨잖아요. 존재했던 것들은 흔적을 남긴다고. 그걸 믿는다고 하셨잖아요? 우리 아빠는 우리 엄마가 공사 현장에만 있다고 생각하는 거 같은데, 그건 아니잖아요? 우리 엄마의 흔적은 곳곳에 있는 거잖아요. 저는 풀 냄새에도, 바람에도 엄마를 느껴요.(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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