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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매(윤흥길)

단편소설

by 빈배93 2024. 2. 8.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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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는 것만큼 잘 드러나는 것도 없다.  사표를 넣고 다니는 시골 국민학교 교사 김시철, 전직 신문국장 체씨, 늙은 대학생 최씨, 다방레지 미스 현, 미륵보살 손마담. 할일없는 인생들의 집합소 산호다방에 새로운 주방장이 나타나고, 변화가 시작된다. 자신을 철저히 감추는 주방장에 대한 호기심은 자꾸만 커져가는데.

 

○ 네, 일일입니다. 뺨이라도 갈기듯 귓전에 울려오는 투박한 남자목소리를 듣고 그는 갑자기 망연해져서 한동안 손에 드린 수화기를 멀뚱히 내려다보았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그는 침착을 가장하여 스스로를 기만하는 여유작작한 자세로, 다급한 소리를 토하는 살아 있는 하나의 생물체 같은 수화기를 원래의 자리에 도로 걸었다. 그러고는 재빨리 전화부스에서 나왔는데, 나와서 생각해 보니 자기가 전화통에 대고 무슨 얘길 한 것도 같고 안 한 것도 같은 참으로 얼쩍지근한 기분이었다.(159)

 

○ 마담하고 경찰에 같이 있는데, 현양 그년이야 뭐 지금도 느물느물하죠. 신고를 받고 경찰들이 디리닥쳐서 보니까 아 글쎄, 동맥을 끊긴커녕 술이나 따라 마셔가면서 그때까지 방송국에다 전화질하느라고 해롱해롱하고 있더래요. 현양 그년 지랄 바람에 아까운 생목숨 하나만 개평으로 잃었죠. 개썅년 같으니!(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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