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잡지사 기자인 나, 나의 연하 사수 그녀. 그녀에게서 들은 관계성의 물, 혹은 호의에 대한 이야기.
○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는 호의를 베푸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요. 호의를 받아야만 그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어요. 내 쪽에서 아무리 호의를 베푼다 한들 상대방이 받지 않으면 관계성이 형성되지 않으니까요. 반면에 호의를 받게 되면 무조건 관계성이 생겨요. 그래서 상대의 호의를 끌어내는 게 중요하죠. 그건 물 한 잔 정도로도 충분해요.(162)
○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눈덩이를 굴리는 일과 비슷했다. 사랑할수록 더 사랑하게 된다.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미워할수록 더 미워하게 된다. 매 순간 관계가 호의와 악의 사이에서 어느 쪽으로 기울어지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완전히 달라졌다.(166)
○ 그 언니의 손을 맞잡기 전에도, 나는 최선을 다해 좋은 쪽으로만 생각했어요. 다 잘될 거야. 괜찮아질 거야. 비행기는 무사히 착륙하고, 아빠는 깨어날 거야. 하지만 어느 순간 머리는 폭발한 것처럼 멍해졌고 끔찍한 공포가 밀려왔죠. 그때 그 언니의 손을 잡게 된 거예요.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었기에 나는 그저 그 언니의 손에만 집중했어요. 그러자 마치 태어나서 누군가의 손을 처음 잡아본 것처럼 그 손의 물성이 고스란히 느껴졌어요. 물렁물렁한 손바닥이라든가, 그 안에 든 뼈 혹은 흐르는 피의 온기 같은 것들이. 나는 눈을 감고, 그 느낌에만 집중했어요. 거기서부터 모든 게 바뀌기 시작했어요. 그 작지만, 내 쪽에서 찾아낸 좋은 느낌에서부터.(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