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한다는 것], 고병권, 너머학교, 2010.
한문학은 문사철을 아우르는 과목이다. 문사철이란, 문학·사학·철학의 줄임말이다. 한문학과는 이곳 저곳에 걸쳐있는 과이기 때문에 지금도 정체성이 모호하기만 하다. 하지만 르네상스형 지식인1)에 근접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점은 장점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대학시절부터 철학서적을 일부러 읽어왔던 것 같다. 그런데 읽고 나면 그때뿐이었다. 무슨 말이 그리도 어려운지, 그 용어에 질식할 것 같은 기분은 지금도 여전하다.
지금도 끊임없이 철학 서적을 구해서 읽고 있다. 그사이에 발전한 것이 있다면 철학 서적을 선택하는 능력이 조금 생겼다는 것이다. 무조건 쉽게 풀어쓴 책을 선택하는 것, 그것이 10년 철학 공부의 성과이다. 너무 허무한가? 하지만 난해할 수도 있는 철학을 쉽게 풀어쓸 수 있다는 자체가 책의 질을 보증한다. 실제 어려운 철학 용어 때문에 철학에 입문할 엄두를 못내는 사람이 많다.철학전공자들도 이점에 대해서 인식하고 있다. 그런 취지에서 만든 책이 고병권 선생의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쓰여졌다. 때문에 난해한 철학용어를 자제하며 예화를 들어가며 아주 쉽게 서술하고 있다. 부록을 포함해 134쪽 밖에 되지 않는 분량이라, 2시간 만에 다 읽고, 2독을 하였다. ‘두 번 읽을 가치가 없는 책은 한 번 읽을 가치도 없다’고 하였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나 같은 얼치기 철학 지망생에게는 참 좋은 책이었다. 이 책을 두번 읽으며 내 머릿속에 강하게 남은 기억들을 몇 개 끄집어내는 재구성 하는 것으로 책 소개를 대신한다.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남들처럼 생각하고, 편견을 갖고 생각하고, 관습대로 생각하는 것은 ‘생각한다’가 아니다. ‘생각한다’는 것은 ‘다르게 생각한다’의 줄임말로, 적극적인 행위이다. 사람은 생물학적으로는 한 번 죽지만, 인문학적으로는 여러번 죽는다. 지금과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면 이전의 나는 죽고 지금의 내가 태어나는 것이다.
‘생각한다’ 우리에게 주는 이득이 무엇일까? 다르게 생각하게 되면 선택의 범위가 늘어나게 된다. 선택의 범위가 늘어나면 우리는 그만큼의 자유를 더 갖게 된다. 농구·배구·베드민턴을 잘 하는 사람과 숨쉬기 밖에 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운동에 있어서 두 사람이 가지는 자유의 범위는 차이가 크다. 생각은 행동은 낳는다. 따라서 우리는 다르게 생각을 함으로써 보다 넓은 행동의 자유를 얻을 수 있다. 그러면 우리가 갖는 자유는 남들의 것 더하기 나만의 것으로 넓어질 수 있다.
생각없이 사는 것은 나쁜가? 아주 나쁘다. 유태인 학살에 관여한 많은 독일 공무원들이 그 예이다. 그들은 생각없이 열심히 공무를 수행한 것 뿐 이라고 한다. 자신들의 행위가 무엇을 야기하는 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한나 아렌트의 말을 빌리자면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다.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기존의 관습과 편견에 의해 행동한다는 의미이다. 우리도 언제든 내 의지와 상관없이 악을 저지를 수도 있다. 버튼을 누르면 작동하는 기계처럼 살고 싶은가? 슬프지만 우리는 기계와 별반 다름없는 삶을 살고 있다. 내가 한 생각이 과연 나의 생각인지, 다른 사람의 생각이 내게 주입된 것인지 생각해보라.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조차도 내 생각은 별로 없다. 결국 남들의 말과 개념이 내 머릿속에 프로그래밍 되어있을 뿐이다. 하지만 내 생각인지 남의 생각인지를 자각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천양지차이다. 그래서 우리는 적극적으로 생각을 해야한다. 사회의 편견과 관습으로 점철된 나의 생각을 깨우기 위해서 말이다.다른 생각이 일어나면 우리는 편견과 관습에 과감하게 NO!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철학이 필요한 이유고, '생각하기'가 필요한 이유이다.
1) 르네상스형 지식인이란, 문학, 역사, 지리, 철학, 과학, 의학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지식을 습득하는 사람을 말한다. 대표적인 이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정약용 같은 이가 있다. 최근 학문이 분화되면서 그런 사람을 멸종 상태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자각으로 상이한 분야의 전공자들이 함께 하는 경우가 차츰 늘고 있다. 이 책을 엮은 고병권 선생이 소속된 ‘수유+너머’라는 곳도 그런 취지에서 출발한 단체이다. ‘수유+너머’의 고미숙 선생은 나의 대학원 선배님이기도 해서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단, 내가 너무 까마득한 후배이기 때문에, 고미숙 선생은 나를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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