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자는 천신만고 끝에 지백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였다.
그리고는 지백과 지백의 일가들을 모조리 죽여버렸다.
그래도 분노가 풀리지 않았는지 이렇게 말한다.
“지백놈의 머리에 옻칠을 해서 요강을 만들어라. 내 시원하게 볼 일을 볼 것이다.”
적의 머리를 취하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장에서 흔히 있는 일이었지만,
그 머리로 요강을 만드는 일은 볼 수 없는 일이다.
필자가 과문하여 그럴 수도 있겠으나,
조양자의 분노가 얼마나 극심하였는지,
또 훌륭하다는 제후가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욕심으로 패가망신한 지백에게도 충신이 있었으니, 그 이름이 예양이었다.
예양은 요강이 되어버린 제 주인의 원수를 갚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거짓으로 죄수가 되어 궁중에서 노역을 하며 기회를 엿보았다.
비수를 품고서 측간 아래의 똥통으로 내려가 조양자가 오기를 기다렸다.
조양자가 측간에 가다가 마음이 이상해서 측간을 수색하게 하였는데, 예양을 발견하게 된다.
좌우의 신하들이 조양자에게 말하였다.
“죽이셔야합니다!”
예양이 말하였다.
“의로운 선비다. 내가 조심해서 피하면 그뿐이다. 놓아주어라!”
예양은 원수의 용서를 받는 것이 치욕스러웠지만, 물러났다.
그리고는 다시 주인의 원수를 갚기 위한 행동을 한다.
한 번 얼굴이 알려진 예양은 자신을 감추어야 했다.
그래서 제 몸에 옻칠을 하여 나병에 걸린 사람처럼 외모를 꾸미고,
숯을 혀에 올려 스스로 벙어리가 되었다.
예양이 시장에서 구걸을 하고 지내는데, 그의 아내조차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런데, 친구 하나가 예양을 알아보고 울면서 말하였다.
“자네의 재주로 조양자를 섬긴다면 필히 가까이에서 모실 수 있을 것이네. 그렇게만 된다면 조양자를 죽이는 것이 더 쉬워질 것인데, 어찌하여 이렇게 자신을 학대하는가?”
예양이 말하였다.
“그럴 수는 없네. 이미 신하가 되어서 다시 그를 죽이려고 한다면 이것은 두 마음을 품는 것이네. 내가 하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지만, 이렇게 하는 이유는 장차 천하에 남의 신하될 자들이 두 마음을 품는 것을 부끄럽게 하고자 함이네.”
조양자가 외출을 하게 되었다.
예양은 다리 밑에 엎드려 있으면서 기회를 보았다.
예양이 다리를 지나려는 찰라, 말이 갑자기 놀라서 펄쩍 뛰었다.
조양자가 말하였다.
“다리 아래를 수색해 보아라.”
예양은 다시 붙잡히게 되었고, 조양자는 할 수 없이 말하였다.
“죽여라!”
예양의 장렬한 죽음은 역사적으로 큰 칭송을 듣고 있다.
그러나 한가지 의문이 있다.
이미 죽은 군주에게 충성을 바치기 전에,
생전에 주군의 영토에 대한 욕심을 말렸다면 사단을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혹 지백이 예양 충언을 듣지 않아 결국 죽게 되었더라도,
복수는 언제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겠는가?
조양자는 지백의 머리를 변기로 만드는 잔인한 면과,
예양을 의인이라며 놓아주는 대인으로서의 면모를 동시에 보여주었다.
어느 것이 조양자의 본모습일까?
아마도 둘 다가 조양자 본모습일 것이다.
정치를 한다는 것은 잔인함과 관대함의 사이에서 줄을 타는 것이 아닐까?
한발만 잘못 디뎌도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줄타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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