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학교에는 1학년을 위해 국악공연 팀이 와서 공연을 하고 있다.(나는 교무실에 앉아서 방송을 지켜보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나는 국악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국악을 들어본 적이 없다. 국악에 대한 나의 불호는 어디에서 왔는가? 국악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국악과의 만남이 없었던 탓이다.(뭘 알아야 좋아하던 싫어하던 할 것이 아닌가? 모르면 좋아할 수 없는 것은 당연지사다.)
나는 배드민턴을 대단히 좋아한다. 8년간을 하루도 쉬지 않았다. 배드민턴을 하는 순간만큼은 무한한 자유와 즐거움을 만끽한다. 배드민턴을 치기 전에는 ‘저것도 운동인가?’라는 생각을 했었다. 실력이 점차 늘어갈수록 그 재미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국악에 대한 나의 불호와 배드민턴에 대한 홀릭 사이에 관류하는 것이 있다. 바로 ‘경험치’. 좋아하기 위해서는 많이 해보아야 한다.(많이 해보았으나 재미가 없으면, 그만두자.) 10,000시간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누구나 10,000시간만 투자하면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마 배드민턴을 친 시간이 10,000시간은 될 것이다. 그 밖에 내가 10,000시간을 투자한 것이 있다면 한문과 독서 정도가 아닐까. 책을 읽다 지치면 배드민턴을 치고, 배드민턴을 치다 지치면 한문을 공부한다. 그래서 잠시도 심심할 시간이 없다.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은가? 다양한 경험을 하라. 자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은가? ‘자유’ 그 자체에 대해 공부하라. 어제 오늘 서울대 선정 인문고전 50선 중 존 스튜어드 밀의 [자유론]을 읽었다. 그리고 조금더 '자유'를 알게 되었다.
밀은 늘 글을 두 번 썼다. 초고를 쓴 다음, 그 원고를 가끔 꺼내서 문장 하나하나를 다시 읽어 생각해보고 비판하면서 다시 썼다. 아내 해리엇 태일러와 함께 토론을 하며 글을 다듬었다. [자유론]을 다듬던 중 아내가 죽는다. 아내를 아주 많이 사랑한 밀은 [자유론]을 아내의 영전에 바쳤다. [자유론]은 출판된 지 100년도 넘었다. 그럼에도 오늘날 현실에 많은 점들을 시사하고 있다. 역시 고전이다.
자유 최고의 적은 무엇일까? 내가 옳다고 굳건히 믿는 것이다. 내가 절대로 틀릴리가 없다면, 나와 다른 생각은 틀린 것이 된다. 예수를 죽인 법관 역시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그리고 당시로는 틀린 생각도 아니었다. 진리에 대한 한없는 겸손. 그것이 자유에 있어 최고의 요건이 된다. 다양한 생각들이 숨쉬는 사회를 위해선 나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겸손이 필요하다.
자유 최고의 적은 무엇일까? 다수의 횡포이다. 다수의 횡포에서, 다수는 여론이라는 형태를 가진다.(그 여론이라는 것도 소수에 의해 조작되는 경우가 많다.) 다수의 횡포 속에서는 자유롭게 말할 수 없다. 모난 돌이 되면 자기만 손해다. 그러니 침묵할 수 밖에. 그것이 누적되다 보면 결국은 자유로운 생각 그 자체를 할 수 없게 된다. 모든 사람의 자신의 견해를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사회. 그것이 밀이 꿈꾼 이상사회였다. 지금도 여전히 요원한 현실이지만.
이 책은 앞부분은 지극히 흥미로웠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지지부진한 느낌이었다. 원전 자체가 썩 재미있지 않으니, 이 정도만이라도 재미있게 썼으니, 일단은 성공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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