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마을」, 『정통한국 문학대계』, 오영수, 어문각, 1994.
지난 주말(9월 25일), 일광해수욕장을 다녀왔다. 10번은 족히 갔으면서, 또 새로운 것을 발견하였다. 그것이 뭔고 하니 ‘오영수’라는 소설가와 그의 대표작 「갯마을」의 발견이었다. 일광해수욕장 입구에는 두 개의 공원이 있다.(둘 다 너무 규모가 작아 공원이라고 명명하였으나, 그렇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하나는 진입로에 위치한 ‘강송정공원’이고, 다른 하나는 해수욕장 바로 앞의 ‘별님공원’이다. 강송정 공원의 솔밭은 오영수의 소설 「갯마을」의 배경이 된 장소인데, 부산시에서 보존가치를 인정하여 우량 소나무 숲으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별님 공원에는 ‘난계 오영수 갯마을 문학비’가 세워져 있다. 부산 지역을 대표하는 소설가인데, 내게는 낯선 이름이었다. 월요일 날 출근을 해서 도서관을 갔다. 그리고 한 쪽 모퉁이에서 「갯마을」을 빼어들고서 읽게 되었다.
|난계 오영수 갯마을 문학비|
「갯마을」은 이렇게 시작된다. “서西로 멀리 기차소리를 바람결에 들으며, 어쩌면 동해 파도가 돌담 밑을 찰싹대는 H라는 조그만 갯마을이 있다.” 갯마을은 현재 일광 해수욕장 옆의 어촌 마을을 배경으로 하였다. 따라서 기차소리는 동해남부선을 달리는 완행열차의 것이 되겠다.(어릴 때 방학이면 늘 그 동해남부선을 타고서 외갓집에 다녀왔기에 내게는 특별한 추억이다.) 작가 오영수는 울주군 언양에서 태어나, 기장 · 좌천 · 동래에서 평생을 살았다. 재미있는 것은 나의 일가가 모여 사는 곳과 정확하게 겹친다는 점이다. 지금도 여전히 기장과 동래에는 우리 일가들이 널려있다. 당연히 그의 문학 속에 등장하는 공간들은 내게 너무도 익숙한 곳들 이다.
|동해남부선 철길|
「갯마을」은 오영수의 1953년 작으로, 갯마을에 사는 청상과부 해순이의 이야기를 그린 단편소설이다. 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제주도 해녀 하나가 동해안의 가난한 갯마을에 왔다가, 뜨내기 고기잡이의 애를 배었다. 10달이 지나 아이를 낳게 되었으니, 그 아이가 해순이다. 해순은 어려서부터 어머니로부터 물질을 배운다. 해순이의 마을에는 과부들이 유달리 많았다. 모두 바다가 남편들을 데려갔기 때문이다. 해순이는 나이 19살에 시집을 간다. 남편은 끔찍이도 해순이를 위한다. 행복도 잠시, 고기잡이를 나간 남편을 바다가 뺏어가 버린다. 과부가 된 해순이는 이미 과부인 시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산다. 동병상련이이고 했던가? 그녀의 시어머니는 그런 해순이를 불쌍하게 생각하여 재가를 시켜준다. 어촌을 벗어나 농촌으로 간 해순이는 또 다시 징용으로 남편을 읽게 된다. 해순이는 바다를 못 견디게 그리워한다. 그래서 산으로 자꾸만 올라간다. 이런 모습을 본 마을 사람들 사이에 소문이 떠돈다. 해순이에게 매구 혼이 들렸다는 소문. 해순의 두 번째 시어머니는 급기야 굿을 하려 한다. 굿을 차리는 그날 결국 해순이는 갯마을로 돌아온다. 첫 번째 시어머니와 마을의 과부들은 그런 해순이와 함께 다시 멸치떼를 걷어 올리는 후리막으로 달려간다.
|[갯마을]의 배경이 되는 곳에서 조개을 잡는 어민들|
13페이지의 짧은 소설임에도 그 여운이 상당히 길다. 어째서 그렇게 긴 여운이 남은 것일까? 아무래도 소설 속에 묘사된 풍경들이 내게는 너무도 익숙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 이 소설을 읽게 된 계기가 그곳에서 작가의 문학비를 보게 된 것이었으니. 책을 읽는 내내 그 풍경이 눈 앞 가득 펼쳐져 있었다. 멸치잡이, 미역채취, 조개캐기. 기장 일광 지역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풍경들이다. 먼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낯선 풍경이라지만, 평생을 이 지역에서 살아온 내게는 너무도 친숙한 풍경이다. 그 풍경들이 가련한 한 여인의 삶과 어우러졌기에 더욱 긴 여운이 남지 않았나 싶다. 여기서 나오는 멸치는 다름 아닌 기장멸치이고, 미역은 기장미역이다.
소설 중간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바다에서 죽고 바다로 해서 산다.” 갯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하나 예외랄 것 없이 바다에서 죽고, 바다로 해서 산다. 마찬가지로 농촌에 사는 사람들은 땅에서 죽고, 땅으로 해서 산다. 나는? 아마 교사인 나는 이렇게 말해야 할 것 같다. “학교에서 죽고, 학교로 해서 산다.” 바다 · 땅 · 학교, 이 모두가 각자에게 삶의 터전이다. 현실의 내 삶이 힘들고 어렵지만, 결국 우리는 내 삶의 터전으로 인해 살아갈 수 있다. 매구 혼이 들었다는 소리를 들어가며 해순이가 못내 그리워한 바다는 결국 우리가 살아가야만 하는 삶의 터전에 대한 또 다른 표현이 아니었을까? 떠나고 나서야 그리워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심사라지만, 해순이는 실존하지 않는 인물이라지만, 지금도 가난한 갯마을로 남아 있는 일광해수욕장 근처의 어촌을 바라보는 내 심정은 처연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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