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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교에서 배운 101가지] 건축을 통해 인문학의 세계를 엿보다

독서

by 빈배93 2011. 10. 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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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교에서 배운 101가지, 매튜 프레더릭, 동녘, 2010.

 

여행에 있어 건축물에 대한 감상은 중요한 요소이다. 학기 중이라 쉽게 여행을 떠날 수는 없지만, 앞으로 가게 될 여행을 준비한다는 마음으로 건축학교에서 배운 101가지라는 책을 집어 들었다. 이 책은 여행을 통해 의미를 발견하며 즐거워하고 싶은 사람에게 괜찮은 안내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101가지 중 084번째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건축에 대한 두 가지 관점. 건축은 진실을 실천한다. 적절한 건물은 보편적인 지식에 책임을 지며 기능과 재료를 정직하게 표현한다. 건축은 이야기를 실천한다. 건축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수단이며 사회적 통념을 전달하는 캔버스이자 일상생활을 시연하는 무대이다.”(084)

 

앞으로 가게 될 여행에서 만나게 될 건축물은 이 책 이전의 건축물이 아닌 새로운 건축물로 내게 다가올 것 같다. 물론 거기에서 사회적 통념이나 일상생활의 모습을 찾아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이 책의 저자는 미국의 건축가이자 도시설계가인 매튜 프레더릭이다. 책의 모양부터 체재와 편집까지 일반적인 서적의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아마 본인의 책도 하나의 건축물처럼 생각한 모양이다. 이 책은 강렬한 제목과 그에 대한 약간의 부연설명, 그리고 멋진 삽화가 어우러져 있다. 불필요한 말은 철저히 제거한 깔끔한 책이다. 101한가지의 건축학도를 위한 조언이 있다. 책을 읽으며 꼭 기억해두고 싶은 말들을 초록을 하였다. 초록을 마치고 보니 그 수가 무려 28개나 되었다. 이 책은 그만큼 주옥같은 글귀들이 풍부하게 있다. 이 책을 통해 배운 내용을 이전의 내 경험에 적용시켜보자.

 

지난 2010130일 날. 우장춘 기념관 앞에 그려진 벽화를 보고 이런 글을 썼던 적이 있다.

 

 

  |우장춘 유적지 앞 유치원의 벽화 |

 

우장춘 유적지 바로 옆에는 유치원이 있다. 그 벽에는 예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옆에 골프연습장이 아닌 유치원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그리고 오늘 이런 글귀를 얻었다.

 

한계가 창의성을 만든다. 너무 작은 대지면적, 불만족스러운 지형, 지나치게 긴 공간, 익숙하지 않은 자재, 고객의 모순된 요구 등 설계상 한계 때문에 슬퍼하지 말라. 그런 한계 속에 문제의 해결책이 있다! 가파른 경사 때문에 일반적인 건물을 세우기가 어려운가? 그렇다면 환상적인 계단과 경사로와 아트리움을 수직적으로 잘 이용한 공간을 만들어보라. 건물 앞에 추한 벽이 떡하니 서 있는가? 그 벽을 매우 흥미롭고 기억에 남을 만한 전망 속에 포함시킬 방법을 찾아보라. 너무 좁거나 긴 대지, 건물, 방을 설계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는가? 비정상적인 비례를 흥미롭게 이용한다면 뜻밖의 성과를 얻게 될 것이다.(097)

 

우장춘 유적지에 있는 벽은 충분히 보기 흉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해당 유적지의 관리자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아름다운 벽화가 그려졌다. 부득이함에서 출발한 벽화가 오히려 내게 흥미롭고 기억에 남을 만한 전망이 되었으니, 전화위복의 사례라 하겠다.

 

애초에 이 책의 출판 의도는 건축과 학생을 위한 안내였다. 그러나 훌륭한 인문학 서적이기도 하다. 읽는 동안 나도 모르게 음악과의 유사성에 주목을 하기도 하였다. 왜 그랬을까? 건축은 예술의 하위 장르이다. 따라서 예술 일반론으로, 더 나아가 인문학 일반론으로 확장될 여지가 충분하다. 그 중 대표적인 사례를 들어본다.

 

현실에 주관적이나 객관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주관적 참여란 물체와 하나가 되었다는 생각이며 객관적 참여란 물체와 분리되었다는 생각이다. 객관성은 과학자, 기술자, 기계공, 논리학자, 수학자의 영역이다. 주관성은 화가, 음악가, 신비주의자, 그 외 모든 자유 영혼들의 영역이다. 현대인들은 객관적인 견해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여러분의 세계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건축을 이해하고 창조하는 데 있어서는 객관적 · 주관적 참여 모두 중요하다.”(023)

 

비단 건축만이 객관적·주관적 참여가 모두 중요한 것은 아니다. 결국 우리의 삶이라는 것도 어떨 때는 객관적이고 어떨 때는 주관적일 필요가 있다. 그런데 객관은 좋은 것이고 주관은 불완전하고 뭔가 객관보다 열등하다는 인식의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는 구절이다.

 

효과적이고 창조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은 메타사고, 생각하고 있음을 생각하는과정을 거친다. 메타 사고(meta-thinking)란 무언가를 생각하는 동안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인지하는 것이다. 메타 사고를 하는 사람은 사고과정을 점검하고 확장하며 비판하고 재조정하면서 내면으로 끊임없이 대화한다.”(032)

 

이 구절은 어디서 많이 본 듯하다. 지난겨울에 읽었던 코이케 유노스케라는 일본 스님이 지은 [생각 버리기 연습]에서 봤던 내용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생각 버리기 연습]에서는 자신의 생각을 겹 따옴표 안에 넣고서 자신의 감정을 객관적으로 살펴보라고 말한다. 그러면 자신에게 일어나는 감정을 다스릴 수 있다고 하였다. 결국 그것은 프레데릭이 말한 메타 사고와 다름없다.

 

이 책은 글쓰기 교재로 읽힐 가능성도 충분하다. 건축이 맨땅에 무언가를 세우는 것이라면, 글쓰기 역시 빈 종이에 뭔가를 채우는 것이니 말이다. 책에서 이런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부드러운 생각은 부드러운 선으로, 딱딱한 생각은 딱딱한 선으로.(027)”

 

이렇게 바꾸어 생각해봤다. ‘부드러운 생각은 부드러운 어투로, 딱딱한 생각은 짧고 간명한 문장으로.’ 또 이런 글귀도 눈에 들어왔다.

 

건축가는 대기만성형이다. 50세 이전에 확고한 자리를 잡은 건축가는 드물다. 광범위한 지식을 통합하고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직업은 건축 밖에 없다. 건축가는 역사, 미술, 사회학, 물리학, 심리학, 재료학, 상징론, 정치 외에도 무수히 많은 분야에 대한 지식을 가져야 한다. 규제를 준수하고 기후에 적응하며 지진에 견딜 수 있는 건물을 만들어야 한다. 건물 안에는 엘리베이터와 다양한 기계 구조가 포함되며 사용자의 다양한 기능적 · 심리적 필요도 충족해야 한다. 다양한 사항을 고려하여 하나의 완성품을 만들어내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며 수없는 시행착오를 거친다. 건축계에 몸담고 싶다면 장기적으로 생각하라.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101)

 

좋은 글을 쓰고 싶어, 너무도 조급한 사람에게 죽비가 되어주는 구절이다. 50세 전에 확고히 한 분야의 전문가로 자리 잡는 것은 힘든 일이다. 글쓰기계(?)에 몸담고 싶다면 장기적으로 생각하고 느긋한 노력을 하라는 말로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며 이전에 읽은 책, 이전에 가본 여행지가 떠올랐다무엇인가를 갈망하면 그 무엇이 모든 질서를 재편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좋은 글 쓰기에 대한 갈망! 퇴폐적이지도 소비적이지도 않기에 괜찮은 갈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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