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냇골 이야기」(1961년 작), 『정통한국 문학대계』, 오영수, 어문각, 1994.
현실이 답답해 숨이 막히면, 사람이 없는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 왜 사람이 없는 곳인가? 우리에게 현실이란 다름 아닌 사람과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개인이 관계 맺는 사람이 직접적이던 간접적이던 간에. 하지만 막상 어디론가 훌쩍 떠나려 해도 셀 수 없이 많은 제약 때문에 결국은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만다. 그 제약이란 다름 아닌 개인의 소유이다. 정말로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을 때, 우리는 떠날 수 있다. 그 떠남이 꼭 숨통을 트이게 한다는 보장도 없지만.
오영수의 「은냇골 이야기」는 바깥세상에서 살 수 없는 사연을 가진 인물들이 모여 사는 어느 산골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악랄한 일본경찰조차 들어오지 못하는 깊은 산골에서 인생의 2막을 사는 이들이 그 주인공이다.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서로의 온기에 기대어 사는 그들의 삶은 힘겹기만 하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떠나고 죽어간다. 그렇게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간다.
박영감의 죽음으로 시작된 소설은 김영감의 술회로 이어진다. 박영감에게는 ‘만이’라는 아들이 하나 있다. 그 ‘만이’는 박영감이 아들인지, 김영감의 아들인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소설의 이러한 설정은 무슨 ‘불륜’을 이야기하자는 것이 결코 아니다. 지독히도 가난한 산골마을에서 그들은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다. 원시적인 생존을 위한 결과물이 바로 ‘만이’일 뿐이다. 죽은 박영감을 두고 김영감은 끝내 하지 못한 말을 되뇐다.
“동생, 만이는 커갈수록 하는 짓이 꼭 자넬세, 뒤가 든든하니 언제 죽어도 한이 없겠네.”
마지막의 김영감의 대사를 읽으며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의 결말이 떠올랐다. 이 소설을 통해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구수경이라는 연구자의 말을 빌려보자.
“(「은냇골 이야기」는) 원시적인 생명력과 공동체의식으로 소박하게 살아가는 인물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바깥세계와 완전히 단절된 은냇골에서 추위와 굶주림, 종족보존을 고민하며 모계 중심적 가족질서를 이루며 살아간다. 그 과정에서 바깥세상을 지배하는 법과 관습, 윤리적 질서 등은 힘을 잃고 있다. 오직 나와 마을사람, 인간과 자연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공동체적 삶을 만들어가는 원시적 건강성의 세계가 존재할 뿐이다. 이러한 오영수의 작품세계는 리얼리즘 소설이 보여주는 갈등의 미학에서 벗어나, 순응과 공존, 원시적 생명력과 공동체 의식 등 식물적인 삶의 방식과 여성적인 가치를 재조명하는 특성을 나타내고 있다.”
결코 밝은 내용이 아닌 이 소설을 읽으며 나는 따뜻함을 느꼈다. 왜 그랬을까? 구수경의 말을 빌리자면, ‘바깥세상을 지배하는 법과 관습, 윤리적 질서’가 지배하지 않은 ‘순응과 공존’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 소설을 통해 오늘 날의 법과 관습, 윤리적 질서에 회의하고 있는 나의 현실인식을 엿보았다.
얼마 전 김용주의 『나는, 꼭 행복해야 하는가』를 읽었다. 현실을 떠나 치악산 어느 산골마을에 사는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 책이었다. 은냇골 사람들과는 달리 양식걱정은 없지만, 소설 속 인물들과 가장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을 해본다. 갑갑한 현실을 살아가며 그런 삶을 동경하면서도, 다시 현실의 삶에 안주하는 스스로를 돌아본다. 청도 두메산골 어딘가에 있었을 은냇골 마을은 지금도 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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