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지리학』, 박승규, 책세상, 2009.
"어데고?" 부산 사람인 내가 지인知人에게 전화 걸고 처음 하는 말이다. 지금껏 수천 번을 해온 말이지만, 그말의 의미에 대해서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일상의 지리학』을 읽다가 그와 관련된 의미 있는 구절을 발견했다.
도서관에서는 책을 봐야 하고 술집에서는 술을 마셔야 하듯이, 인간의 행동은 대체로 공간이 허락하는 범주에서 영위되고 있다. 공간이 모든 것을 생각한다는 결정은 지나친 것일지 모르지만, 일상에서 친구들과 어떻게 놀지를 의논하는 것은 놀이 방식을 결정하는 과정인 동시에 놀기 위한 공간을 선택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인간은 공간이 허락하는 행위를 하면서 일상을 살아간다.(17)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무한정의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 그건 쉽지 않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란 단지 공간 선택의 자유일 뿐이다.(사실 공간 선택의 자유를 갖기도 쉽지 않다.) 어떤 공간에 들어서면 그 공간이 요구하는 행동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 말 안듣는 예비군을 생각해보라. 결코 기간병들의 말을 듣지 않고 멋대로 행동하려 하지만 결국 할 것은 다 하고 퇴소한다. 결국 내가 지인에게 장소를 묻는 의미는 '공간'을 통해 '행위'를 파악하려 한 것이었다.
나는 최근 제대로 된 여행에 대한 관심이 높다. 여행의 본질은 가보지 못한 새로운 공간에 있다. 그래서 '공간'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도서관에 갔다가 눈에 띈 책이 있었으니, 『일상의 지리학』이었다. 이 책의 저자는 춘천교대의 교수로 있는 지리학자 박승규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기존의 도구적인 지리학에서 벗어나 인문 지리학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을 하고 있다.
이 책이 누구에게나 아주 재미있다고 말할 자신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내게는 아주 재미있었다. 같은 말이 지나치게 반복되어서 임팩트가 조금 떨어지는 아쉬움이 있긴 하다. 초록을 해보니 A4로 3장이 나왔다.(별 볼 일 없는 책의 경우는 A4 반 장도 나오지 않는다.) 그만큼 생각할거리들을 충분히 제시하고 있다.
이 책에 의하면, 오늘 하루 내가 어디에 있었는가를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 나를 예로 들어보자. 오늘 내가 가장 오래 있었던 공간을 순서대로 나열해 보면 이렇다.
1.집(12시간) 2. 학교(10시간) 3. 자가용(2시간)
평일에 내가 있는 공간은 거의 위와 같이 고정되어 있다. 남들 같으면 술집이 들어갈 수도 있고 커피샵이나 헬스장이 들어갈 수도 있을 테지만, 나는 오로지 위의 세 공간 속에서만 생활하고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새삼스럽게 확인된다. 글을 쓰다보내 내가 재미있다. 하나 더 해보자. 학교에서의 10간 동안 내가 오래 머무른 공간을 순서대로 나열해 본다.
1. 교무실(5시간) 2. 교실(3시간) 3. 체육관(1시간) 4. 너구리굴 + 식당(1시간)
요즘 책에 푹 빠져 사는지라 교무실에 있는 시간이 길다. 10년째 베드민턴은 꼭 1시간을 치고 있다. 올해는 수업 시수가 적어서 교실에 있는 시간은 좀 적다. 점심 식사는 베드민턴 때문에 늘 후다닥이고, 이놈의 나쁜 습관 때문에 너구리굴은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가 어떤 교사인지 감이 온다.
세상은 무한정 넓지만, 나는 학교와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 속에만 갖혀 있다. 때문에 생각할 자유와 행동할 자유도 딱 그 공간이 허용하는 만큼만을 누리고 있다. 탈출할 방법이 없을까? 당연히 있다. 방법은 두가지다. 하나는 한정된 공간을 유지한 채 생각을 넓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공간 자체를 확대하는 것이다. 전자는 독서를 통해 얻어낼 수 있다.(스페인의 한 작가는 '인생이라는 감옥에서 밖을 향한 유일한 창이 책'이라는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후자는 여행을 통해 얻어낼 수 있다. 여기에서 독서와 여행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고, 독서와 여행의 필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곱씹어볼 내용 딱 3개만 제시한다. 이 책에는 이런 글들이 무수히 많다. 이를 통해 이 책의 내용에 대한 소개를 대신한다. 혹 '삶' 그 자체에 관심이 많거나, '여행'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한다.
박정희 정권 당시 ‘새마을 운동’이라는 미명하에 주름지고 접혀 있던 공간들이 펴지기 시작했다. 농로는 쭉 뻗은 신작로가 되었고, 마을로 들어서는 골목길은 차가 다닐 수 있는 아스팔트 길로 변했다. 주름지거나 접혀 있던 농촌에는 개발의 이름으로 신도시가 건설되었다. 신작로가 만들어지고 대도시 주변 농촌에 새로운 도시가 건설되면서 곡선을 배제되고 직선은 개발이나 발전의 상징이 되었다. 새마을 운동을 통해 농촌을 직선화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전통 공간이 갖고 있었던 질서는 사라졌다.(65)
근대 건물에 설치된 계단은 애초부터 사회적 소수자를 배려하지 못한 공간이기에 장애우나 노인을 위한 공간이 별도로 설계되기도 한다. 정상적인 사람은 계단을 이용하고 장애우나 노인은 경사로를 이용하게 한다. 이 경사로는 사회적 소수자를 배려한 공간이지만, 좀 더 생각해보면 정상과 비정상을 구별 짓고 확인하는 공간인 셈이다. 구별이 불필요한 하나의 공간을 모색하기보다 기능적으로 별도의 공간을 마련한다는 것은, 매우 형식적이고 기표적인 차원의 배려이다. 하지만 그 제한적인 배려의 공간조차 공적인 영역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사적 공간에서 사회적 소수자는 여전히 배제의 대상이다.(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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