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회마을은 풍산 류씨가 600여 년간 대대로 살아온 집성촌이다.
그 600년을 통틀어 가장 유명한 양반이 그 유명한 서애 류성용이다.
마을로 들어가는 오솔길에 서애의 기지가 돋보이는 일화가 안내판에 있다.
그 내용을 소개한다.
하회마을을 보기 전에 하나라도 더 알고 가는 것은 필요하다.
그냥 재빨리 목적지를 향해 가는 사람들이여!
그 목적지에 빨리 가서 무얼하려 하는가?
여행이 백미터 경주인가?
아는 만큼 느끼고 즐길 수 있다는 말.
흔해빠진 말이지만 긴요하고 긴요한 말이다.
[서애 류성룡 선생의 바둑 이야기]를 다시 수정을 보아 인용한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의 사령관 이여송은 바둑의 고수였다고 한다.
하루는 의주로 피난을 와있던 선조에게 대국을 요청한다.
선조의 바둑 실력은 별로였다.
그러나 원병군 사령관의 요청을 거절할 형편이 못되었다.(더러워서…)
선조를 보필하던 서애는 궁리끝에 묘책을 떠올린다.
서애는 대국판을 가리는 일산에 작은 구멍을 뚫었다.
그리곤 그 구멍으로 들어오는 빛줄기로 선조가 둘 곳을 비추어 주었다.
원병군 사령관을 이겨버릴 수도, 임금을 지게할 수도 없는 서애.
결국 비김바둑으로 끝나게 만들었다.
서애의 바둑 실력이 그만큼 뛰어났다는 얘기다.
현재 하회마을 내 옥연정사의 간죽문을 나오면 바둑판 처럼 생긴 바위 삼인석이 있다.
슬프지만 어쩌다보니 옥연정사는 가보지 못했고, 삼인석도 보질 못하였다.
그처럼 명석한 두뇌를 가진 서애가 왜 일본의 침략에 대해서는 오판을 했을까?
똑똑한 사람도 사람이기에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럴 리가 없다고 철석같이 믿는다.
그래서 주위의 칭송을 듣는 똑똑한 사람의 한마디 한마디는 무서운 것이다.
때문에 똑똑하다는 사람은 더 많은 책임감을 갖고 신중하게 판단할 의무가 생긴다.
임진왜란으로 조선이 불바다가 되었다.
그보다 더 무서운 세월의 흐름으로 이젠 조선의 흔적을 찾을 길이 없다.
600년이 넘게 그 형태를 고스란히 간직한 하회마을.
그것은 임금을 위해 충을 다한 서애의 음덕 때문일까?
아니면 그냥 순전히 지형적·시기적 운 때문일까?
관리상태가 너무너무 안좋다. 유네스코 지정 마을에 있는 건데 이게 뭔가?
풍산류씨 대종택: 지금도 문중회의 장소로 쓰이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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