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퐁텐 우화집』, 라 퐁텐 지음, 신은영 옮김, 미래사, 2006.
일제 치하에서 말 꽤나 했던 사람들은 주제소로 끌려갔다. 군부 독재의 서슬이 퍼랬던 시절에도 그랬다. 독재자가 지배하는 시절은 펜을 무기로 삼은 지성인들에게는 잔인한 시절이다. 그 유명한 태양왕 루이 14세는 절대왕정을 이룩했다. 지성인들은 입을 다물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침 없는 풍자와 비판을 쏟아낸 사람이 있었다. 우화집 『Fables』를 쓴 라 퐁텐이다.
라 퐁텐의 권력자에 기생한 삶을 살았다. 기생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아부성의 우화도 몇 편 썼다. 그러나 대부분은 권력에 아부하지 않고 비판하고 풍자하는 글을 썼다. 작가의 개인적 생애와 작품의 불일치에 대해서 좋지 못한 시선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개인적 생애와 작품 속 세계가 일치하는 작가가 얼마나 되던가? 그런 의미에서 법정 스님이나 소로우 같은 분은 존경받아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그가 이루어낸 우화집의 성취는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옮긴이는 라 퐁텐의 우화집을 이렇게 말했다. 나 또한 옮긴이의 ‘독창적’이란 표현에 완전히 동의한다.
“이솝 · 동양 우화를 비롯한 다양한 소재를 독창적 수법으로 다루면서 탐욕 · 이기주의 등 인간 본래의 나쁜 버릇을 지적하기도 하고 루이 14세의 궁정이나 세태를 풍자하였다.”(책 날개)
180페이지 남짓한 이 책에서 전반부 60페이지는 이솝의 생애를 다루고 있다.(총 23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책 전체를 통해 가장 볼만한 부분이다. 그 첫머리부터 독자를 사로잡는 내용이 펼쳐져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 보자.
“호머와 이솝의 출생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확실하게 알려진 것이 없다. 기껏해야 그들 신상에 일어났던 일 중 가장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몇몇 사건들이 알려져 있을 뿐이다. 이건 정말 놀랄 만한 일이 아닌가! 역사책을 보면 이보다 별반 유쾌하지도, 또 필요치도 않은 일들이 잔뜩 기록되어 있는데 말이다.…하지만 수세기 이래로 마땅히 그 누구보다 더 찬양받았어야 했을 두 인물 호머와 이솝의 생애에 대해서는 가장 중요한 일들조차도 알려져 있지 않다.”(9페이지)
라 퐁텐의 우화는 공통된 형식을 갖고 있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① 2∼3페이지 이내의 짧은 분량이다. ② 우화가 글 전체의 95%이상의 분량을 차지 한다. ③ 우화 끝에는 반드시 짤막한 풍자와 비판이 배치된다.(이 풍자와 비판을 위해 우화라는 문학적 장치를 사용했다. 때문에 마지막 문장에서 작가의 혜안을 쉽게 엿볼 수 있다.)
이 책을 혹 다시 읽는다면 하루에 한 편의 우화만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만큼 괜찮다. 우화 끝에 배치된 라 퐁텐의 짤막한 훈계를 몇 개만 맛보기로 제시하며 글을 접는다.
“음흉한 사람은 어디서든 늘 잡히게 마련이다. 어떤 이리든 이리는 이리같이 군다는 것, 그건 너무도 분명한 사실이다.”(「양치기가 된 이리」)
“이런 일을 볼 때 악인들하고는 계속해서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가 있다. 평화 그 자체는 아주 좋은 것이다. 나도 그건 인정한다. 하지만 신의가 없는 적을 상대로 할 때는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늑대와 양」)
“궁전에서 잘 보이려면 판에 박힌 아첨꾼이 되어서도, 너무 솔직하게 말을 해서도 안 된다. 때로는 애매하게 대답해야 한다.”(「사자의 궁전」)
“어떤 일이 전혀 사리에 맞지 않을 때 이성적으로 잘못을 깨우치려 하는 것은 격에 맞지 않는 일이다. 그럴 때는 화를 낼 게 아니라 상대방보다 한 술 더 뜨는 것이 상책이다.”(「엉금한 보관인」)
“광기의 신은 사랑의 신 앞에 서서 그를 인도해 다니도록 하라.”(「연애와 광기」)
라 퐁텐 우화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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