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권력은 벌 하는 데서 보다 용서하는 데서 힘을 가진다

잡동사니

by 빈배93 2012. 7. 27. 06:24

본문

   갈맷길 1-2 코스를 걸었다. 22.5km를 4시간 30분에 걸었다. 코스는 이렇다. "0940 청강리 공영주차장 출발 - 1020 기장군청 - 1050 죽성만 - 1110 드라마 '드림' 세트장 - 1200 대변항 - 1240 연화리 서암마을 - 1330 해동용궁사 - 1345 공수마을 - 1400 송정해수욕장" 1-2코스의 송정부터 문텐로드까지 4.9km는 아직 걷지 못했다. 꽤 긴거리였다. 덕분에 발바닥에 물집이 잡혔다. 그래도 어제 보다는 발전된 여행이었다. 썬크림을 발랐고, 밀집모자도 하나 사서 쓰고, 교통편도 헤매지 않고 바로 이용했고, 점심도 지역 대표음식인 물회를 먹었다. 아마 내일은 더 나은 도보여행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드라마 드림 세트장

 

   틀을 홀로 걸었다. 마음 맞는 사람과 함께 하는 여행이 최고다. 마음 안 맞는 사람과 함께 하는 여행은 최악이다. 그런데 마음 맞는 사람이 어디 흔한가? 적어도 혼자 떠나는 여행은 차선은 된다. 혼자 다니니 홀가분했다. 외로움이란 군중 속에 있을 때 더 느끼는 법. 홀로 있음에 침잠하며,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약해진다고 한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어쩌면 외로움과 친구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 죽성마을 어사암

 

   성마을에는 매바위 혹은 어사암이라 불리는 바위가 있다. 그 사연이 흥미롭다. 1883년, 대동미를 싣고 가던 배가 풍랑으로 좌초되었다. 배는 박살이 나고 쌀은 흩어졌다. 가난에 굶주린 백성들이 그 쌀을 건져서 먹었다. 어찌 되었건 요즘의 법으로 말하자면 점유이탈물 횡령죄가 성립되기에 사또는 그들을 옥에 가두도록 명령했다. 고을 사또는 백성들을 풀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냥 방면했다가 나중에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싶어서 골치가 아팠다. 마침 그 사건을 조사하러 서울에서 어사가 내려왔다. 사또는 어사를 극진히 대접했다. 그리고 슬그머니 쌀을 건져먹은 백성을 방면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했다. 그말을 들은 어사는 흔쾌히 그러자고 대답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사또도 칭송하고 어사도 칭송했다는 이야기다. 안내판에는 어사의 이름과 사또의 이름이 있다. 그런데 그게 본인들이나 후손에게는 중요하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개똥이라도 좋고 소똥이라도 상관 없질 않은가? 역사적으로 크게 중요한 사람도 아니고. 그래서 굳이 이름을 밝히진 않는다.

 

△ 서암마을 젖병등대 

 

   사암에 얽힌 이야기를 읽고 있으니 어디선가 읽었던 구절이 떠올랐다. 대충은 이런 내용이었다. "권력은 벌을 주는 데서 힘을 발휘하기 보다는 벌을 주지 않음으로 그 힘을 보여준다." 검찰이 힘있는 기관인 이유는 기소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기소하지 않는 데 있는 것처럼. 위정자의 입장에서 반드시 벌을 주어야 할 일은 벌을 주어야 한다. 하지만 용서로 해결할 일이 더 많다. 위의 예에서 보았듯, 권력은 용서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용서는 여러모로 훌륭한 수단이다. 용서하는 사람에게도 용서받는 사람에게도. 고을 수령이 사법과 행정에 큰 권한을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위의 이야기를 보면 그 한계도 여실히 드러난다. 

 

△ 서암마을 풍경

 

   교에서 나는 학생과 선생이다. 내가 교장 교감 만큼이나 학교에서 힘을 가진 것으로 착각하는 학생들이 많다. 집에서는 가장이다. 내가 눈만 한 번 부라리면 아이들은 슬슬 긴다. 학생들의 눈에 우리 아이들의 눈에 나는 막대한 권력을 가진 사람이다. 벌을 줄 수 있고 용서해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아이들이 정말로 잘못하는 일이 얼마나 될까? 벌을 주어서 얻는 것보다는 용서함으로써 얻는 것이 훨씬 크다. 톨스토이도 그의 단편에서 '타인에게 분노하고, 타인을 원망하지 말라,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용서 뿐이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공자 역시 충忠과 함께 서恕(용서)를 나란히 놓았다. 학교에서도 용서하고 집에서 용서하는 그런 사람이면 좋겠다.

  

△ 송정 죽도공원

 

   선도가 유배왔다는 황학대, 드라마 드림 세트장, 끝없이 이어지는 동해바다와 등대. 송정의 죽도 공원까지 폭염주의보 속에서도 걸을 만한 길이었다.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