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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할 길이 분명해서, 그 길을 열심히 걸을 뿐

잡동사니

by 빈배93 2012. 7. 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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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맷길 700리 걷기 사흘째다. 누적거리 41km이고, 누적시간 9시간 25분이다. 경유지는 이랬다. "1035 송정해수욕장 출발 - 1100 구덕포 - 1120 청사포 - 1140 해월정 - 1200 해운대 해수욕장 도착"  6.3km를 1시간 25분을 걸었다. 700리 길을 다 걷겠다고 다짐한 것이 불과 이틀 전이다. 그런데 '이 짓을 왜 하고 있는거지?'라는 회의가 여러 번 찾아왔다. 이미 가본 곳을 경유할 때면, '그냥 버스 타고 지나칠까?'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또 '남이 지정한 길로만 꼭 다녀야 하나?'란 회의도 찾아왔다. 이 세가지 질문은 700리 길을 다 걸을 때까지 끊이지 않을 듯하다. 일단은 이 회의들을 생각으로나마 격파해두는 것이 좋을 듯 싶다.

  

△ 송정해수욕장

 

   맷길 700리를 왜 걷는가? 마음을 닦기 위함이다. 수양의 방법에는 좌선도 있지만, 운수행각이라는 것도 있다. 명상에 익숙하지 못한 나는 길을 걸으며 하는 수양이 그나마 뭔가 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 몸이 고되야 정신이 맑아진다고 한다.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직접 확인해본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한 공부가 될 것이다. 기껏 사흘째기 때문에, 몸이 크게 고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신이 맑아졌다는 느낌은 아직 전∼혀 없다. 갈맷길 700리를 다 걷고 나면, 그때 무엇인가 얻은 것이 생긴다면, 이 고행이 헛되진 않을 것이다. 돈오점수. 깨달음은 갑작스럽게 다가오지만, 수양은 점차 점차 오래 오래 해야한다는 말을 믿고, 일단 걷기로 한다. 쭈∼욱!

 

△ 구덕포 거릿대 나무(장군 나무)

 

   미 가본 곳을 건너뛰면 안 되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안 된다. 한 번 가봤다고 다 본 것이 아니다. 그런 경험을 여러 번하고, 그에 대해서 글도 썼으면서, 자꾸만 건너 뛰고 싶은 마음은 어디서 왔을까? 그것은 아마 한 번 보면 모든 것을 다 본 것으로 단정해버리는 건방짐으로부터 왔을 것이다. 겸손하게 세상을 보기 위해서라도 '건너뛰기'는 하지 않을 생각이다. 겸손한 자세로만 임한다면, 분명 두 번째 가는 길은 처음 가는 길보다 사람을 깊이 있게 만들어 준다.

 

△ 달맞이 고개 해월정海月亭

 

   이 정해준 길로만 가야하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초행길이라면 그래야 한다. 사실 아무 길이나 걸어도 그만이다. 시비 거는 사람도 없다. 그런데 왜 굳이 그래야 하는가? 그것은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서 세상을 보는 이치와 같다. 여행 전문가가 못되니, 여행 전문가들이 만든 코스에 기대는 것은 부득이한 일이면서도 현명한 처신이다. 혹 전문가가 짜놓은 코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음에 갈 때 자신의 경험을 반영해 수정하면 된다.  백지 상태에서 글을 쓰는 것보다는 써 놓은 글을 고치는 것이 편한 것처럼. 짜여진 코스를 걷는 장점이 또 있다. 가야할 길이 분명하니 이것저것 신경쓰지 않고 부지런하게 걷게 된다는 점이다. 가야할 길이 분명하지 않다면, 가지 않아도 그만이지 않겠는가?

   

△ 해운대 해수욕장

 

   리 삶도 그렇지 않을까? 가야할 길을 정해서 부지런히 가고, 그러다 이게 아니다 싶으면 방향을 수정하고, 다시 힘내서 열심히 걸어가는 것. 가야할 길이 없다면 부지런히 살 이유가 없어진다. 어느 책 제목처럼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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