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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대한민국 학생으로 산다는 것

학교2

by 빈배93 2012. 10. 12.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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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임으로서 아이들의 성적에 관심을 쏟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생각해왔다. 그래서 많이도 몰아부쳤다. 자습 가장 많이 하는 반. 내신 시험은 언제나 1,2등. 모의고사도 1,2,3등을 왔다갔다하는 반이 내 반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뭔가 허전했다. 성적은 일부인데, 지극히 작은 일부인데, 모든 것인양 착각했던 게 아닌가 싶다. 작년에 담임을 했던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불편하다. 올해는 담임을 안 하고 있다. 내년에도 아마 담임을 하지 못할 것 같다. 상황이 그렇다. 몇 년 후 다시 담임을 하게 된다면, 최소한 성적 가지고 닦달하는 일은 없어야겠다.

 

내가 고등학교 입학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이었다.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 서글펐다.

나이 40이 다 된 지금은, 해가 뜨기 전에 잠이 깬다는 것이 서글프다.

 

아침 등교길. 아이들은 지각을 면하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언덕을 올라간다.

몇몇은 아예 포기하고 천천히 느릿느릿 걸어 올라 간다.

이러나 저러나 교실에 겨우 도착하면 축축한 옷이 살에 달라 붙는다.

왜 학교는 늘 언덕 위에만 있는가?

 

아침부터 오후까지 강행군이다.

국어, 영어, 수학, 다시 국어, 영어, 수학.

어쩌다가 과학이나 사회 한두 과목이 끼어든다.

학습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 나머지 과목들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국어, 영어, 수학, 수학, 국어, 영어…….

 

보충수업은 공부가 모자란 학생이 받는 수업으로 알고있다.

그런데 모조리 다 보충수업을 받는다.

이 나라 고등학생은 모조리 공부가 모자란 학생임이 분명하다.

 

야간 자율학습 시간은 학생이 자율적으로 하는 학습하는 시간이 아니다.

일단 강제로 하되, 제가 공부하고 싶은 과목만 제한적으로 자율로 학습하는 시간이다.

  

아이들은 어지간하면 학원에 간다.

학원 중독 증상을 보이는 아이들도 꽤나 있다.

혼자서는 도대체 어떻게 공부해야할지 모르겠다고 한다.

 

 

뭘 하고 싶냐고 물으면, 특별히 하고 싶은 것이 없단다.

하루를 저렇게 사니 뭘 하고 싶은지 고민할 시간이나 제대로 있었겠는가?

죽을 고생을 하며 공부할 수는 있다.

그런데 대체 뭘 위해서 그러는지에 대해서는 알고 해야하지 않겠는가?

 

 

힘든게 분명한데, 초등학교 시절부터 힘들지 않은 적이 없어, 그게 힘들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닐까?

친구들이 다 하는데 나는 하지 않으면 불안하니 결국 따라할 수 밖에 없고,

그런 친구들은 그런 나를 보고 또 따라한다.

악순환이다. 

마치 서로 총구를 겨누고 상대방이 먼저 내리기를 기다리며 초조해 하는 사람처럼.

 

내 아이들도 그런 기막힌 세상에 편입되어야만 한다.

그때 가서도 저렇게 환하게 웃을 수 있을까? 

 

대한민국, 그래도 살만한 나라가 아닌가?

 

멀지 않은 미래에 오늘날의 교육현장이 하나의 희극으로 비춰지기를 바라며…….

(2012.10.12.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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