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지도부에 앉아 있다 보니, 염색으로 잡혀 오는 학생들을 자주 봅니다. 걔네들을 붙잡고 이유를 물어보면, 대답의 거의 똑같습니다. ‘개성을 표현 하고 싶어서’, 아니면 ‘자신을 아름답게 꾸미고 싶어서’랍니다. ‘개성과 미를 표현하는 것이 나쁜 것인가?’하고 자문을 해봅니다. 나쁘다고 말할 근거를 저는 못 찾겠습니다. 그렇다면 일선 학교에서 학생들의 염색을 금지하는 이유는 뭘까요? 일선 학교에서는 대략 다음의 네 가지 이유를 대고 있습니다.
첫째, 학생은 역시 학생다워야 한다. 학생답다는 것이 뭘까요? 배우려는 마음가짐, 배우는 사람으로서의 겸손함, 함께 배우는 학생을 배려하려는 자세. 이런 것들이 합쳐진 것이 학생답다는 것이 아닐까요? 저는 염색과 학생다움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둘째, 면학 분위기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정말 그럴까요? 대학교 도서관에 염색을 한 여학생이 많습니다. 그들이 면학분위기를 해치던가요? 파마하고 염색한 엄마가 자식 공부에 나쁜 영향을 미치던가요? 이것도 동의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셋째, 염색약이 독성이 학생들의 건강에 해를 준다. 학생의 건강을 걱정하는 생활지도부? 생활지도부에서 13년을 근무했지만, 처음 들어보는 웃긴 소리입니다.
넷째, 부모들의 경제적인 부담이 크다. 언제부터 학교가 학생들 가정의 미용실 비용을 걱정했습니까? 설사 경제적으로 부담이 된다는 것이 사실이라 해도, 그건 그 집안에서 알아서 할 문제이지 학교가 관여할 부분은 아니지 않나요?
중고등학교에서 정말로 염색을 금지하는 이유가 뭘까요? 전북대 송기춘 교수의 말을 인용합니다.
“염색금지의 바탕에는 머리는 까만색이라는 고정관념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단일민족 이데올로기입니다. 다문화사회가 펼쳐지고 있고 머리색도 다양하게 될 텐데, 머리색을 굳이 ‘자신이 가진 그 색깔 그대로’ 유지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제가 처음 던진 질문은 ‘아이들이 왜 염색을 할까?’였습니다. 그래서 염색을 하지 않아야 된다는 식으로 글을 쓰려고 했습니다. 약간의 검색 끝에 위의 글을 발견했습니다. 결국 저의 질문은 ‘학교에서는 왜 염색을 못하게 할까?’로 선회하게 되었습니다. 송기춘 교수의 생각은 제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것입니다. 염색에 대해서 깊이 회의하고 고민해보지도 않고, ‘그냥 그래왔기 때문에 그게 옳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저는 소위 범생이 출신입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교사가 되지 못했을 겁니다. 학창시절에 감히 파마나 염색 따위를 해볼 엄두를 내지 못하였습니다. 국가에서 정한 교과 내용을 가장 충실히 학습했고, 그래서 이 사회의 지배층이 원하는 사고방식에 가장 잘 길들여졌기 때문에 교사가 된 게 아닐까요? 저 같은 사람이 다수 포진한 곳이 교육계입니다. 때문에 사회 전체에서 교육계의 변화가 가장 느린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저도 이제 생활지도부를 떠나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납득할 수 없는데 단속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요?
(2012.10.23.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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