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이야기 하나. 주인공은 A초등학교의 K선생.
“K선생은 왼손잡이를 보지 못한다. K선생의 교실에는 왼손잡이가 없다. 아니 학기 초에는 좀 있었다. K선생의 교실에서 공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할 원칙이 있다. 왼손 사용 금지! 왼손잡이 학생은 교실에서 절대 왼손을 써서는 안 된다. 왼손을 쓰는 학생은 친구들에 의해 고발되고, 벌을 받는다. 그런 식으로 K선생은 기어이 왼손잡이 모두를 오른손잡이로 만들었다.”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아닌가? 안타깝게도 현재 자행되고 있는 실화다. 예사로 넘겨들을 수 없었다. 나도 왼손잡이고, 내 아내도 왼손잡이고, 내 아이들도 모두 왼손잡이기 때문이다.
왼손잡이인 게 잘못인가? K선생의 논리는 이렇다. <대한민국에서 왼손잡이로 사는 것은 불편하다. 그 불편을 줄이기 위해 몸소 힘들여 교정하는 것이다. 그러니 부모들은 가만히 있으라!> K선생은 공공연하게 자기의 이런 방침에 감사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다고 한다.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나쁘다. 파쇼란 말은 이때 붙어야 하지 않겠는가? K선생은 자신의 행동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라 믿고 있다. 제 의사도 제대로 표현 못하는 초등학교 저학년 꼬맹이를 두고, 결코 옳은 수 없는 일을 옳다고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몇몇 학부모는 K선생의 방침에 ‘잘한다’며 동의를 표했다. 거참. 몇몇 학부모는 K선생의 방침에 불만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그 뒤에 제 아이에게 돌아올 불이익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K선생이 받은 피드백은 ‘잘한다’가 전부였다. K선생의 왼손잡이 박멸은 이 대명천지이자 민주국가인 대한민국에서 당분간 지속될 것 같다. 그래도 K선생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학부모에게 교사로서 조언을 해야겠다.
나도 선생이지만, 그것도 학생과 붙박이 선생이지만, 선생 뭐 별거 못 된다. 학부모 컴플레인이 들어오면 설사 교사 본인 생각에 정말 옳은 행동이었어도 움찔한다. 하물며 잘못된 일임에랴. 턱도 없는 짓거리를 하는데,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멱살 잡고 싸우라는 소리가 아니다. 최대한 정중하면서도 확실하게 의사를 표현해야 한다. 가만히 있으면 K선생은 아무런 회의懷疑 없이 계속 그럴 것이다. 논쟁이 붙으면 ‘왼손잡이가 나쁘다!’는 명제가 참이 아닌 이상, K선생이 어떻게 말을 해도 말이 안 되게 되어 있다. 교사가 은근히 우리 애를 따돌리면 어쩌느냐는 걱정도 들었다만,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그랬다가는 파직이다. 무소불위인양 행동해도 한낱 교사일 뿐이니, 걱정 말고 의사를 표현하라.
사범대나 교대를 갓 졸업한 교사가 인격적·학문적으로 얼마나 깊을까? 십 수 년의 경력을 가진 교사라면 인격적·학문적으로 좀 다를까?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들 모두 인간과 교육과 세상을 알아가는 과정에 있을 뿐이지, 모든 것을 훤히 꿰고 있지는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얄팍한 인격과 학문에 도취되어 아무나 가르치려고 든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 역시도 거기에서 한 발도 벗어나 있질 못하다. 남의 선생 된 자는 이를 인정하고, 좀 더 겸손해져야할 필요가 있다.
확고한 원칙을 갖고 있다는 것이 좋은 걸까? 어떤 경우에는 그렇다. 그러나 자칫하면 타인에 대한 억압과 강요로 전이되기 쉽다. K선생처럼 말이다. 그러니 너무 일찍, 너무 확고한, 신념을 가지는 것도 곤란하다.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다는 황희 정승처럼 좀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그러니 교사들이여! 열정적으로 근무하는 것은 좋지만, 독선에 빠져서 무턱대고 가르치고 억지로 바꾸려고 달려들지는 마라! 세상사가 그렇지만, 교육에 있어서도 반드시 옳은 것은 아주 드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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