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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스리는 법] 스트레스는 인간의 숙명이다

독서

by 빈배93 2012. 11. 30.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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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스리는 법]

 

1. 일체개고一切皆苦

 

변하지 않는 것은 죽은 것이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기까지 정신적· 육체적으로 끊임없이 변화한다. 고로 인간은 살아있다. 육체는 한 번 태어나고 한 번 죽지만 그 사이에 무수한 변화를 겪는다. 정신은 더하다. 정신은 사람에 따라 수십 번 죽고, 수십 번 새로 태어나기도 한다. 그 사이에 일어나는 무수한 변화는 말할 것도 없다.

 

문제는 변화가 필연적으로 스트레스를 동반한다는 데 있다. 일체개고一切皆苦라고 했던가?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스트레스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갑자기 왜 이리 허전하지?’ 혹은 갑자기 왜 이렇게 눈이 부시지?’라며. 그 뒤로 죽는 날까지 스트레스와 함께 살아간다. 살아서 스트레스와 절연하는 일이 가능할까? 스트레스와의 완벽한 절연을 해탈이라고 하는데, 해탈을 사후의 것이라 본다면, 살아서의 해탈은 불가능하다. 스트레스는 인간의 숙명이다.

 

그러니 그냥 막 살아야한단 말인가? 스트레스를 없애지는 못하겠지만 최소화하는 것은,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하다. 스트레스에 사로잡혀 허우적거리는 것이 인간의 숙명은 아니다. 한 번 밖에 없는 인생, 스트레스의 노예로 산다면 너무 불행하지 않겠는가? 세상의 모든 종교가 용어만 다를 뿐이지 번뇌(Stress)에서 벗어날 방법들을 수없이 말해왔다. 단지, 우리가 믿지 못하고, 배울 의지를 가지지 않았을 뿐이지. 진정한 배움은 문제가 문제임을 직시하는 순간에야 가능해진다.

 

2. 스트레스가 인간의 숙명임을 받아들여라

 

첫째, 결코 바뀌지 않을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지면, 결코 바뀌지 않을 것이 주는 스트레스가 증폭된다. 스트레스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선 스트레스가 인간의 숙명임을 겸허히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일종의 체념인데, 체념하는 순간 스트레스는 좀 더 편안한 다른 성질의 것으로 변한다.

 

둘째, 번뇌(Stress)를 무화無化할 수는 없지만 최소화 할 수는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믿음과 같은 추상적인 개념은 우리가 믿을 때에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믿어야만 한다. 거기서 그치면 공염불에 그친다. 반드시 스스로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실천 방안은 가급적 쉽고 편하게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하나의 실천으로 스트레스가 조금 덜어졌다면, 스트레스를 줄였다는 소득 외에도, 성공했다는 기억이 자리 잡아 더 많은 실천을 이끌어낼 심리가 강화된다.

 

3. 무리 생활

 

스트레스는 삶의 모든 곳으로부터 일어난다. 그 중에서도 특히 많이 발생하는 곳이 있다. 8020의 법칙을 적용하자면, 스트레스의 80%는 무리생활로 인한 대인 접촉으로부터 비롯된다. 가정과 직장이 무리생활의 대표적인 경우이다. 가족이 특히나 중시되는 우리나라에서는 역설적으로 가정이 스트레스의 최대 생산처가 된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오직 내 집뿐이라는 노랫말은 환상이자 바램일 뿐이다. 직장 동료가 신종플루에 걸렸을 때 받는 스트레스의 정도와 자식이 신종플루에 걸렸을 때 오는 스트레스의 정도를 비교해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나머지 20%는 개인적인 생활로부터 오는데, 죽음에 대한 두려움·질병으로 인한 고통·존재에 대한 고민·의식주의 해결 등이 그 구체적 원인이 된다. 이렇게 볼 때, 사람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기 보다는 사람 사이에 태어났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말이 진실에 더 가깝다.

 

4. 자연 속으로, 자아 속으로

 

첫째, 대인 접촉은 필연적으로 스트레스를 동반한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그럴 경우 대인 접촉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아도 훨씬 수월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 상태가 된다. ‘내 이럴 줄 알았다는 중얼거림은 스트레스를 약화시키는 좋은 부적이다.

 

둘째, 대인 접촉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그 방안은 두 갈래로 나뉘는데, 하나는 자연自然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아自我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 두 갈래가 통합된 대표적 예가 산사山寺 생활인데, 굳이 중이 되지 않고도 자연 속에서 제 마음을 살피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이미 다수 존재한다. 농촌 공동체를 꾸리고 있는 윤구병 교수, 농사를 지으며 삶을 가꾸는 판화가 이철수가 이에 해당한다.

 

5. ! ! !

 

대인 접촉은 주로 말을 통해 이루어진다. 말만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분쟁은 무수히 많다. 현존하는 경구警句에서 말에 대한 것이 가장 많다는 것을 생각해볼 때, 말은 언제나 번뇌(Stress)의 주연이었고, 지금도 주연이다. “마음이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다고 하는데, ‘마음대신에 을 놓고서 이렇게 말해도 될 듯하다. “말만 없으면 문제도 문제가 아니고, 번뇌(Stress)도 번뇌(Stress)가 아니다.”

 

6. 꼭 말로 해야 하나?

 

대인 접촉을 하되 대인 접촉을 하지 않는 최선의 방법은 말을 아끼는 것이다. 혹자는 그럼 사회생활을 접으라는 말인가?’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앞으로 제시할 세부적인 방안을 살펴보면, 나도 좋고 남도 좋은 Win-Win 게임이 됨을 알 것이다. 그 세부적 방안은 이렇다.

 

첫째, 남의 말을 잘 듣는 데 주력한다. 이를 충실히 실천하면 말이 아껴질 수밖에 없다. 이야기 잘 들어주는 사람은 타인으로부터 신뢰를 받는다.

 

둘째, 타인에 대한 해석·비판·충고는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거의가 갈등을 야기한다. 해석·비판·충고가 타인을 변하게 만드는 경우도 드물다. 타인에 대한 해석·비판·충고는 가급적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아니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렇게 마음을 먹어도 어차피 마음과 입이 완벽히 통제할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이를 충실히 실천하면 적어도 내 말에 기인한 스트레스를 예방할 수 있다.

 

셋째, 면전에서 감사하다는 말을 하는 학생과, 수줍어서 음료수 하나를 슬쩍 책상에 올려두고 가는 학생 중, 누가 더 선생에게 인상 깊을까? 가급적 언어적 수단 대신 비언어적 수단을 통해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좋다. 불가피할 경우에는 글로 메시지를 전하고, 그마저 불가능할 경우에는 최대한 간명하게 말하는 것이 좋다.

 

넷째, 타인이 말을 요구할 경우에만, 간명한 말로 대답한다. 대부분이 제 말만 하고 싶어 하지, 남의 말을 듣고 싶어 하지는 않는데, 말을 요구할 경우에는 기꺼이 듣고 반영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러니 그 때를 기다려 정확히 말하는 것이 경제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 길어지면 기꺼이 듣겠다던 다짐이 순식간에 흐려진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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