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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템포 천천히

잡동사니

by 빈배93 2012. 12. 17.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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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 출근길이었다. 6층에서 엘리베이터를 버튼을 눌렀다. 1층에 있던 엘리베이터가 6층을 지나쳐 14층으로 올라갔다. 우씨. 그런데 그 다음이 더 기가 막혔다. 13층에 서고, 11층에 서고, 9층에 서고, 8층에 서고……. 이거 무슨 배달하는 사람이 층층이 엘리베이터 세우고 있는 것 같아. 이 바쁜 출근시간에……. 윗층에 대고 고함 한 번 질러버려?라고 집사람에 말하는 순간,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역시나 배달하시는 분이었다. 나이가 70은 된 듯한 호호 할머니. , 고함 안 지르길 정말 잘했구나…….」하고 생각했다. 목례를 하고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서서 할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실 수밖에 없으셨겠구나. 저 연세에 배달을 하실만한 사정이 있으신가?라는 딱한 생각이 연이었다. 차로 걸어가면서 집사람에게 말했다. 고함 안 지르길 정말 잘했다. 한 템포 천천히 행동해고, 격한 표현 삼가고, 직접 보기 전까지는 섣불리 판단하지 말고, 뭐 그래야 한다는 걸 다시 확인하게 되었네.

 

 

   진로와 관련된 질문을 하는 학생이 종종 있다. 선생님, 간호대 어떤가요?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였다.솔직히 모른다. 대신 누구 엄마가 간호사거든, 네가 누군지 밝히고 직접 도움을 구하는 게 어떠냐?이런 질문을 하는 학생도 있다. 선생님 한문학과 나오면 뭐해요?이 질문에는 상세하게 답해줄 수 있다. 내가 나왔으니까. 스튜어디스하는 사람도 있고, 공무원 하는 사람도 있고, 농사 짓는 사람도 있다. 일부 교직에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전공 살려서 직장을 갖는 사람은 극히 드물어.진로교육? 이걸 제대로 할 수 있는 교사가 얼마나 될까? 적어도 우리학교에는 없다는데, 500원 건다. 그럼 어쩌란 말이냐? 걱정할 것 없다. 책이 있질 않은가? 강연 프로그램이 있질 않은가? 진로와 관련된 질문? 내 한테 백 날 해도 답이 없다. 책 봐라! 강연 프로그램 봐라! 나도 그거 보며 공부한다.

 

   《정재승의 과학콘서트, 아무리 작은 스케일에서 들여다보더라도 미세한 부분들이 전체 구조와 유사한 구조를 무한히 되풀이하고 있는 양상(이것을 '자기 유사성'이라고 부른다)은 자연의 패턴들이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다. 만델브로트는 이것을 '프랙털'이라고 불렀다.우리나라 가정의 권력 구조가, 국가 권력 구조와 거의 흡사한 패턴을 띠고 있다고 가정하면(미국, 한국, 일본 정도를 생각해볼 때 거의 그런 것 같다), 가장 중심의 권위적 가족 구조가 약화되어 수평적 권력 구도로 갈수록, 국가의 권력 구조 역시, 아무리 발버둥을 치더라도, 어쩔 수 없이 탈권위, 수평화로 가게 되지 않을까 싶다. 결국 거대한 사회 변혁은 내 가정으로부터 시작되는 셈이고,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유교적 세계관도 이와 무관치는 않아 보인다. 하나 더. '프랙털'을 여행 속에서 찾는다면, 또 다른 여행의 재미를 누릴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글은 그 뜻만 잘 드러내면 그뿐이라.우리 옛 문인들의 한결같은 멘트다. 그런 점에서 트위터나 페이스북은 최적이다. 나아가 우리의 글쓰기 방식마저 바꾸고 있다. 그곳에는 짧은 글 속에 풍성한 위트를 담은 것이 많다. 사람이 생각을 내고, 생각이 도구를 만들고, 도구가 사람을 바꾸고, 바뀐 그 사람이 다시 생각을 내고……. 재미가 끊어질 수 없는 인간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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