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경 옥녀봉(2013.12.05.)
내 필명이 빈배다. 평소의 행실을 돌이켜보면 가당치도 않은 것이지만, 그렇게 살고는 싶다. 왜 하필 빈배인가? 이런 이야기를 읽었다. 웬 부자가 배에다 금은보화를 가득 실을 채 가고 있었다. 돌연 풍랑이 불었고, 근처를 지나던 배 하나가 뒤집혀서, 타고 있던 사람들이 몽땅 물에 빠졌다. 부자는 고민했다. '금은 보화를 실은 채로 저 사람들을 태우면 내 배도 가라앉는다. 저 사람을 태우기 위해서는 내 금은보화를 버려야 한다. 어쩌지?' 부자는 결국 금은보화를 버리고 사람들을 태운다. 그 뒤의 이야기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교훈만은 분명하다. 마음 속에 욕심을 가득 담은 채로는 그 무엇도 담을 수 없다. 다 비워야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다.
@ 강경 옥녀봉(2013.12.05.)
『장자』에도 빈 배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그 내용은 이러하다.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가 빈 배가 자신의 배에 부딪치면, 아무리 성질이 나쁜 사람이라도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배는 빈 배니까. 그러나 그 배 안에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피하라고 소리칠 것이다. 그래도 듣지 못하면 다시 소리칠 것이고, 마침내는 욕을 퍼부을 것이다. 이 모든 일은 그 배 안에 누군가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 그 배가 비어 있다면 소리치지 않을 것이고 화내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강을 건너가는 그대의 배를 빈 배로 만들 수 있다면 아무도 그대와 맞서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그대를 상처 입히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빈 배는 나의 정신적 지향점이 되었다. 월산대군의 "추강에 밤이 드니"하는 시조는 '빈 배'가 나온다. 그래서 살갑다.
@ 강경고등학교(2013.12.05.)
秋江에 밤이 드니
물결이 차노매라
낚시 드리치니
고기 아니 무노매라
무심한 달빛만 싣고
빈 배 저어 오노매라
월산대군月山大君(1454∼1488)은 세조의 손자이자, 예종의 장손이자, 성종의 친형이다. 평생을 시를 짓고 책을 읽으며 자연 속에 묻혀 살았다. 이 시조는 '무심한 달빛을 실었는데 배가 비었다'는 역설적 표현이 좋다. 무심한 달빛은 욕심 없는 화자의 마음이다. 실어 본들 비어 있을 수 밖에 없으니, 역설적 표현이 아닐 수도 있겠다. 나는 이 시조를 어떤 시조보다 높게 평가한다. 이는 말과 삶이 일치하는 월산대군의 진정성 때문이다. 나는 이 시조를 보며 글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가늠한다.
@ 강경 포구(2013.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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