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풍경] 조례 풍경

잡담

by 빈배93 2014. 9. 11. 10:31

본문

   여름 방학, 보충 수업 중. 조례 시간. 엎드려, 자는 아이. 우하고, 모여 떠드는 아이. 드르륵, 문이 열리고, 담임 선생이, 들어 온다. 모여서 떠드는 아이들, 본 척도 않는다. 엎드려 자는 아이들, 볼 수가 없다.

담   임: (출석부로 교탁을 탁탁 친다.)

반   장: (크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야, 앉아라!

   떠들던 아이들. 슬금슬금, 자리를 찾아 앉는다. 엎드려 자던 아이들. 부시시, 일어난다.

담   임: (밝은 목소리로) 아침부터 누가 니들을 재웠니?

학생 1: 누가 재웠는지는 모르겠는데, 반장이 깨운 건 확실해요.

담   임: (웃으면서) 출석 체크부터 하자. 빈 자리가 네 개네? 누구냐?

학생들: ……

담   임: 아, 말 좀 해.

반   장: 라이하고, 유진이하고, 혜유하고, 한 명은 누구지?

학생 1: 지원이요.

담   임: 맞다. 다들 휴가 갔지. 전화 받아놓고……

​학생들: (웃는다.)

담   임: 근데 니들은 왜 휴가 안 가냐?

학생들: ……

조례 중인데 다시 엎드리는 아이들. 조례 중인데 다시 떠드는 아이들. 반장이 조용히 해라고 고함을 지르고 됐다고 만류하는 담임.

담   임: 좋은 소식이 있다.

학생들: (깨어 있는 학생만) 뭔데요?

담   임: 교육청 공문이 내려왔다.

학생들: 뭐냐니까요?

담   임: 2학기부터, 강제 보충수업 금지. 강제 야자 금지.

학생들: (자던 아이들까지 일어나 일제히) 와아.

담   임: 좋으냐?

학생들: (일제히) 예에.

담   임: 나쁜 소식이 있다.

학생들: 뭔데요?

담   임: 공문대로 될 리가 거의 없다는 거.

학생들: (의자를 바짝 당겨 앉고서) 왜요?

담   임: 강제만 아니면 되는 거 아니냐?

학생들: 그래서요?

담   임: 개학하고 나면 설득 작업 들어갈 테지. 성적 떨어지는 게 불보듯 뻔하다. 그러면 대학은 어떻게 할 거냐? 집에 가면 엄마가 놀라고 두겠느냐? 결국은 학원에 가지 않겠느냐? 다른 시도에서는 여전히 강제 보충에 강제 야자가 시행된다. 그러면 너희들만 손해다. 수능 체제가 사라지기 전에는 대안이 없다. 대학을 포기하기 전에는 자유로울 수 없다. 자유로와서는 안 된다. 힘들어도 참고 해야 된다. 길어야 3년인데 그걸 못 참나. 너희들 설득하고, 너희들 부모님 설득하고, 말 안들으면 또 설득하고 또 설득하고, 질릴 때까지 설득해서, 동의서 받겠지. 동의서 받으면 강제가 아닌 거지. 자발적인 게 되는 거지. 그리고는 전처럼 계속 가는 거지. 자는 거지.(버는 거지.는 웅얼거린다.)

학생들: 마지막에 뭐라고 하셨어요.

담   임: (황급히) 아니다.​

학생들: 그래도 끝까지 안 한다고 하면요?

담   임: (의미심장한 웃음만 짓는다.)

학생들: 에이, ​맨날 그렇지.(반짝이던 눈동자 꺼진다.)

   담임 퇴장하고, 아이들 웅성이는데, 영어 선생님 들어오고, 아이들 조용해졌다가, 담요로 온몸을 둘둘 감싸고, 다시, 하나 둘, 엎어진다. 천정에서는, 에어컨 바람이 쌩쌩분다.감은 두 눈, 뚫린 귀로, 투부정사​……하는 소리, 아련히, 들려 온다.     

- 막​

반응형

'잡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산] 금정산(金井山)  (0) 2014.09.11
[회상] 제1시집 출간  (0) 2014.09.11
[부산] 온천천(溫泉川)  (0) 2014.09.11
[여행] 팔공산 카페 에움길  (0) 2014.09.11
[개념] 질문(質問)  (0) 2014.09.11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