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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 빛[光]

소고

by 빈배93 2014. 9. 18.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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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光]

 

1

 

   산 속에서 길을 잃고 나서야 빛의 환희를 알 수 있다. 절망 속에서 괴로워하고서야 손의 따스함을 알 수 있다. 지리산을 종주 하던 길이었다. 한 구간만 더 가자고 하다가 길을 잃었다. 해는 매정하게 넘어갔다. 렌턴 하나에 의지해 6시간을 헤맨 끝에 저기 멀리서 보이는 불빛 하나. 가물거리던 불빛 하나. 뱀사골 산장에서 비추어 오던 그 불빛. 그 불빛은 불빛이 아니었다. 차라리 환희였다. 칠흑(漆黑) 같은 어둠 속에서는 미약한 빛도 큰 힘이 된다. 절망 속에 허우적거리는 이에게는 사소한 손길도 구원의 손길이 된다. 절망 속에서의 몸부림이 빛을 향한 전진이기만 하다면.

 

 

2

 

   어둠 속에선 밝은 곳을 잘 볼 수 있지만, 밝음 속에선 어두운 곳을 거의 볼 수 없다. 달동네에 사는 이는 아침이면 언덕을 내려와서 밥과 목숨을 바꾸고는 저녁이면 다시 언덕을 오르고, 언덕 아래에 사는 이는 가끔씩 달동네를 바라보며 낭만에 젖는다. 빛은 어디에나 있지만 빛 속에 들기는 어렵고, 빛은 세상을 비추지만 모든 것을 드러나게 하지는 않았다.

 

 

3

     

   인공위성에 찍힌 한반도의 밤 사진 속에서 서울은 유난히 환하다. 다들 편안히 잘 시간에도 서울은 여전히 반짝이고, 도시는 불면의 밤을 지새운다. 사람들은 그것이 문명의 발전이라 생각한다. 

 

 

4

 

   제로니모(마지막 인디언 전사로 알려진 아파치족의 전쟁주술사)는 싸우기 전에 빛을 생각하였다. 빛에 대한 그의 통찰은 이러했다. 아침의 빛은 새로 태어난 빛이라 힘이 있다. 그 빛은 사물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저녁의 빛은 생명이 다 된 빛이라 힘이 없다. 그 빛은 사물을 흐릿하게 드러낸다. 맑은 영혼을 갖지 못한 자(침략자였던 영국과 스페인의 백인들을 가리킴)는 흐릿함 속에서 대상을 오인하고, 그들의 오인 속에서 제로니모는 늘 승리하였다.

 

 

5

 

   18시∼20시에 교통사고가 가장 잦다. 출근시간에 비해 대략 67%가 잦다. 밝은 빛에 익숙했던 눈이 어둠에 적응하지 못해서이다. 등산객의 사고는 하산길에 잦다. 오르막보다 내리막이 더 위험하다. 어두워지는 빛과  내려가는 길이 주는 교훈은 인생에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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