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간(人間)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조직에 소속되어, 평생을 그렇게 살다가, 무덤에 가서야 비로소 조직에서 벗어나게 된다. 조직은 안정을 주는 대신 굴종을 요구한다. 안정이 주는 이익이 굴종이 주는 손실보다 크면 순응하며 살지만, 굴종이 주는 손실이 안정이 주는 이익보다 크게 느껴지면 조직에서 벗어나려는 생각을 품게 된다. 그러나 조직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예측할 수 없는 미래가 두려워 멈칫하게 되고, 대체로 순응의 길을 택한다. 안정에 익숙한 사람에게 자유는 좀처럼 다가오지 못하고,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에게 안정은 기필(期必)할 것이 못된다.
2
자유는 아름다우나 방종으로 오염된 자유는 추하다. 자유는 그 속성상 방종이 따르기 쉬운데, 방종을 막기 위해서는 절제(혹은 예의)가 필요하다. 예의는 아름다우나 형식에 치우친 예의는 아부에 가깝다. 예의는 그 속성상 아부로 변질되기 쉬운데, 아부를 막기 위해서는 이익에 대한 무심함이 필요하다. 자유와 예의는 수레의 두 바퀴와 같아서 균형을 이루지 못하면 자유는 추해지고, 예의는 갑갑해진다. 방종과 아부는 눈 먼 말과 같아서 잘 다스리지 못하면 자신만 상하게 할 뿐만 아니라 남도 상하게 한다.
3
자유는 무형식(無形式)이요 무예의(無禮儀)다. 무형식이란 형식이 없음이 아니라 어떤 형식으로도 자유자재(自由自在) 할 수 있음이이요, 무예의란 예의가 없음이 아니라 어떤 예의로도 맞추어 갈 수 있음이다. 자유는 피차간에 간섭 없는 자유이면서 함께 하는 자유라야 온전한 것이다. 예의 없는 자유, 혼자 하는 자유는 자유가 되다만 방종일 뿐이다.
4
조직이 생성되면 그 자체가 하나의 유기물이 되어 스스로의 존속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 조직의 존속에는 형식과 예의가 가장 중요하고, 자유와 자율이 가장 위험하다. 학교는 조직이다. 당연히 조직의 습성을 그대로 갖고 있다.「내가 십여 년을 학교에 다니면서 배운 것은 억압에 대한 굴종과 무감각화였다.」라고 한 말이 근거가 있다. 그런 학교에서 자유를 말하고 자유를 실천한다는 것은 옳은 일이기는 하지만 가망 없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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