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좌도에 퇴계가 있었다면 경상우도에는 남명이 있었다. 이황과 조식은 동시대에 병칭되었다. 오늘날 퇴계는 일본에서까지 퇴계학회가 있을만큼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반면 남명은 그 이름조차 생소한 위인이 되어버렸다. 무엇 때문일까? 퇴계는 이론적 성향의 유학자였고, 남명은 실천적 성향의 유학자였다. 그 결과 퇴계는 거질의 문집을 남겼고, 남명은 퇴계에 비해 얼마 안되는 양의 문집을 남겼다. 퇴계의 제자들은 임진왜란 때 주로 임금을 모시고 피난을 떠났고, 남명의 제자들은 의병장이 되어 조국을 위해 산화하였다. 그 결과 책과 사람이 모두 남은 퇴계가 남명을 압도하게 되었다. 최근 남명에 대한 조명이 경상대학교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는 있으나 아직도 퇴계에 대한 연구를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다. 각자의 영역에서 이미 최고였고 지금도 최고이니까 두 명현이 우열을 따지는 어리석음을 범할 필요는 없다.
출판물의 범람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어온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함량미달의 서적 출판에 대한 염려를 모르는 것은 아니나, 개인 소장용 혹은 가족 소장용 책 한 권 내는 것이 무슨 큰 죄는 아니다. 오히려 가족의 역사라는 측면에서 오히려 권장하고 싶다. 이런 욕심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온 것이다. 양반들이 죽고나면 자손들이 고인의 생전에 써두었던 원고를 문집으로 묶어내는 것은 일종의 의무였다. 그래서 글 꽤나 읽었다는 양반치고 시인이고 수필가이자 경학자 아닌 이들이 없었다. 한문학을 하다보면 어느 것 하나 귀중하지 않은 문집이 없다. 만약 문집으로 엮어내지 않았다면, 그 귀중한 자료들을 어디에서도 찾을 길이 없었을 것이다. 요즘 독서를 좀 한다는 사람들이 읽는 책의 양은 양반들이 읽었던 양의 수십수백배에 해당한다. 그리고 그들은 양반들보다 더 깊고 많은 사고를 한다.('한문'하면 지레 겁부터내고, '한문 잘 하는 사람'하면 엄청난 사고를 소유한 걸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전혀 그렇지않다. 일례로 대학원까지 가서 한문학과 씨름한 나의 사고 수준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들이 출판해서 안 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아직도 여전히 미숙한 글솜씨지만 지난 3개월간 정말로 부지런히 글을 써왔다. 매일 원고지 10매 정도는 썼던 것 같다. 남들은 비웃겠지만, 3개월 전에 썼던 글들과 최근에 쓴 글들을 보며, 스스로 발전한 모습이 대견스럽기까지 하다. 요즘 집사람에게 입버릇처럼 하는 이야기가 있다.
"마누라, 올해가 가기 전에 꼭 내이름으로 책 한 권 낼테야! 자가출판이라는 게 있더라구. 돈 백만원 정도면 지인들과 가족들에게 나누어 줄 수도 있고 말이야. 서점에 내는 건 아니구."
그럼 집사람은 이렇게 대답을 한다.
"할 수 있으면 해 봐! 단, 내가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퀄리티는 꼭 갖춰야해."
내 글의 퀄리티는 아직도 한참이나 멀었지만, 그럴수록 '남은 8개월 더 열심히 써내려가야지'하고 다짐한다. 남들이 비웃어도 올해가 가기 전에 나는 책을 낼 것이다. 적어도 내 자식들에게는 부끄럽지 않은 책을 말이다.
빈배의 서재입니다. 1000권 정도되는 책들이 아이들 책에 밀려 자꾸만 창고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글쓰기 초보탈출] 소재의 빈곤에서 벗어나라(1) (0) | 2011.04.23 |
---|---|
[절에 가기전에 알아두어야할 상식], 일주문 (0) | 2011.04.22 |
[글쓰기 초보탈출] 반짝하는 생각을 붙잡아라 (0) | 2011.04.08 |
[글쓰기 초보탈출] 한 꼭지의 글을 매일 써라 (0) | 2011.04.05 |
글을 쓴다는 것 (0) | 2010.05.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