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0일 08시 17분.
올해 아이들은 밤에 심하게 놀지 않나 보다.
통일 전망대를 가기 위해 6시에 깨웠는데, 거의 다 제시간에 일어나서 여유롭게 출발했다.
담임인 나는 제일 앞에 앉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수학여행 기간 중 가장 많이 본 것이 생수통이다.
7번 국도의 끝을 향해 달리고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동해바다와 소나무들은 아무리봐도 식상하지 않다.
08시 54분.
끝없이 북으로 북으로 올라갔다.
소나무와 철조망, 그너머의 백사장과 푸른바다의 점철.
고성의 논밭도 새싹을 틔워낼 준비를 하고 있다.
[주역]에서 "가장 깊은 겨울이 봄의 시작"이라고 하였다.
09시 11분.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소에 도착했다.
통일전망대는 민간인 통제선 안에 위치해 있어 반드시 출입신고소를 거쳐야 한다.
아이들은 안보교육관으로 이동을 했다.
나는 사진에 담을 거리를 찾았다.
그래서 '통일기원 일붕시비'를 발견했다.
통일을 기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1980년대에 한문 꽤나 하신 분의 한시가 적혀있다.
문학적, 문화적 가치는 없다.
이 비석은 이곳에 있기 때문에 가치를 지닐 뿐이다.
한국전쟁 당시 이지역에서 '호림유격대'가 활동하였다고 한다.
그들을 기리기 위해 만든 전적비가 세워져 있었다.
실체가 잡히지 않는 이데올로기로 인해 희생된 영혼들을 잠시 생각했다.
동해바다를 따라 이어진 강원도 최북단의 도로를 '낭만가도'라 명명했다.
'역사적으로 과격한 테러리스트 중에 낭만주의자가 많다'고 한다.
전쟁의 상처가 얼룩진 곳에 붙여진 낭만가도는 그 연장선상이 아닐까?
동행한 국어선생님이 안내판을 보시고 관동팔경을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설명을 해주셨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시냐고 물었더니, [관동별곡]으로 30년을 수업해보라고 말씀하셨다.
통일안보교육관으로 아이들이 들어가고 있다.
뭐하러 가는 지 모르는 아이들이 태반이었다.
지나가던 한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6.25가 언제 일어났니?"
"1945년이요."
옆에 있던 아이들이 "1950년인데."라고 바로 이야기 해주었지만 씁쓸했다.
아이들에게 출입신고소는 음료수 사먹는 곳일 뿐인가?.
민통선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인원체크다.
들어간 인원과 나오는 인원이 일치하지 않으면 군부대는 난리가 난다.(나는 최전방 수색중대에서 근무하였고 민통선 통제 임무를 수행하였다. 그래서 비교적 소상하게 알고 있다.)
출입신고소 옆에는 큰 매점이 있다.
재미있는 술 이름과 디자인을 보고 잠시 미소지었다. 벌떡주! ㅋㅋ.
09시 49분.
소정의 신고절차를 마치고 다시 이동했다.
도중에 낙석이 자주 보였다.
낙석은 북의 탱크가 남하하는 것을 늦추기 위해 만든 것이다.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리면 돌이 길 안쪽으로 쏟아진다.(군 생활할 때 낙석 폭파훈련을 징그럽게 많이 받았다. 아이들에게 설명해주었으나 반응은 시큰둥했다.)
이름모를 상병과 일병이 탄약고 근무를 하고 있는 듯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선생님도 이런 데서 근무했는다. 민통선 안에서는 여자 구경을 할 수가 없어 할머니도 이쁘게 보인다. 손 꼭 흔들어줘라!"
아이들은 신나게 손을 흔들었고 군인들도 즐겁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불쌍하게 느껴지는건 내 경험 때문 이리라.
보통 초병들 중에 고참급이 버스안에 들어와서 인원체크를 한다.
짬밥이 딸리는 후임병은 탄약고 근무다.
통일 전망대에 도착했다.
평화통일 조형물 바로 아래가 여학생 화장실이다.
글을 쓰는 이 순간 우리 부장님이 "화장실은 왜 찍었어?"라고 말씀하신다.(전 변태가 아닙니다. 조형물을 찍은거에요.ㅎㅎ)
고성팔경은 건봉사, 천학정, 화진포, 청간정, 울산바위, 통일전망대, 송지호, 마산봉 설경이다.
고성팔미는 자연산물회, 명태지리국, 도루묵찌개, 토종흙돼지, 털게찜, 고성막국수, 도치두루치기, 추어탕이다.(나는 가본 곳도 먹어본 것도 거의 없다.)
전망대에는 다른 학교, 특히 남학교 학생들도 많이 있었다.
우리 아이들은 보호해 주지 않아도 된다.
부산 바닷가 짠바람을 맞고 큰 아이들이라, '깡'하나는 전국 어디에 내어놓아도 뒤지지 않는다.(사실이다. 대학 때 우리학교 출신의 여학생을 여러 명 보았는데 하나같이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중단되어버린 금강산 관광이 안내판의 "통일이 멀지 않았음을 꿈꾸게 한다"는 설명을 무색하게한다.
글을 쓰는 지금으로부터 몇일 전에 현대아산의 독점권이 취소되었다는 뉴스를 들었다.
통일전망대에도 봄꽃이 피어있었다.
봄은 휴전선을 가리지 않는다.
남북사람들의 마음에도 통일의 봄이 왔으면 좋겠다.
철조망을 넘어선 곳이 바로 DMZ이다.
남북으로 2Km씩, 155마일이 그렇게 그어져 있다.
통일전망대는 높은 언덕에 위치해있어 조망이 기가 막힌다.
이곳에 여러 번 왔지만 이번만큼 포근하고 햇살이 따스한 적은 없었다.
멀리 초소가 보인다.
강안경계근무를 섰던 군시절이 떠올랐다.
그때 본 임진강 물도 저렇게 맑고 깨끗했었다.(저는 임진강변의 민통선에서 근무했었답니다.)
날이 워낙 좋아서 철조망 너머 금강산이 선명하게 보였다.
똑딱이로 이 정도의 선명함이 나오기는 쉽지 않다.
아이들은 전망대에 위치한 교육장에서 안내를 받았다.
나는 또 뒤로 빠져서 마음껏 풍경을 담았다.
저 멀리 보이는 봉우리가 갈 수 없는 북녘의 금강산 일만이천봉 중 하나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보니 여기도 해안경계초소가 있고, 군인 두 명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었다.
누구는 놀러오고, 누구는 근무하고.
원래 그런게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닌가?
아이들은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서 북녘을 배경으로 제 사진을 찍고 있다.
북녘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떻게 나오느냐 였다.
또 씁쓸했다.
하기야 나도 좋은 사진 건지려고 북녘 생각, 통일 생각은 별로 못했다.
누가 누굴 탓하랴?
수색대에 근무하셨던 2학년 부장 선생님이 경험을 살려 여러 선생님들에게 GP, GOP, DMZ의 개념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다.(난, 잘 알고 있는지라 빠져서 역시나 사진을 찍었다.)
성모상과 불상이 동시에 서 있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우리 세대에 통일이 되기를 성모님과 부처님께 동시에 빌어본다.
마지막으로 다시 북녘의 금강산을 바라보고 전망대를 내려왔다.
언제 다시 저렇게 선명한 금강산을 볼 수 있으려나?
전망대에 있는 금강산 휴게소.
남북관계가 우호적으로 바뀌고,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어야 한다.
정말로 금강산에 있는 휴게소를 사진으로 담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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