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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녀봉 토요 산행

학교2

by 빈배93 2011. 4. 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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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는 한 학기에 한 번씩 토요일날 등산을 한다. 

1,2학년 1,100명 남짓한 여학생을 데리고 봄맞이, 가을맞이를 한다.

산에 가기를 싫어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강제로 다 데리고 간다.

글을 쓰는 지금 몰래 교실에 숨어 있던 아이들 몇 명이 담임의 야단을 맞고 있다.

짜식들 그냥 올라가지.

어제 산행을 위해 지난 월요일부터 좀 바빴다.

아이들 음료수도 준비해야 했고, 보물찾기를 위한 준비도 해야했다.

운동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여고생들에겐 이런 시간이 의미가 깊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오늘 포스팅에는 학생들의 모습이 없다.

그 이유는 보물을 숨기기 위해 1시간 먼저 올라갔기 때문이다.

정상에서 아이들을 잠시 만났지만, 음료수와 상품을 나누어 주기 위해 먼저 하산하였다.

 

산을 끼고 있는 학교는 많겠지만, 학교 안에 등산로가 있는 학교는 흔치 않을 것이다. 

등산객들은 늘상 아침이면 교문으로 들어와 산을 오른다.

학교 뒷산은 '옥녀봉'이라 부른다.

 

산길에 접어들면 바로 '산'스러운 풍경이 펼쳐진다.

 

조금만 더 걸어가면 산 속에 개간을 해놓은 밭이 보인다. 

개인 사유지로 알고 있는데, 벌써 푸른 채소들과 노란 개나리가 눈에 들어온다.

 

개간한 밭을 지나 다시 산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쁜 꽃을 발견했다.

무슨 꽃인지는 모른다.

공부 좀 해야겠다.

하여튼 탐스럽고 아름답다.

 

보물을 숨기기 위해서 나를 포함한 선생님 네 분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보물이라 해봐야 아이스크림 1,000원 짜리 이건만, 아이들은 목숨을 건다.

그래서 이번 산행에서는 학년을 분리한 보물종이를 만들었다. 

1학년 파란색 도장, 2학년 빨간색 도장으로 분리를 했는데, 그래도 10장 넘게 찾은 아이가 있었다고 한다.

보물종이를 들고 매점으로 가면 아이스크림과 교환을 할 수 있다.

 

보통은 친구들에게 나누어주지만, 작년에 어떤 아이는 혼자 들고 있으면서 매일 매일 바꿔먹기도 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유효기간까지 표시해 주었다.

당일 12시까지로.ㅎㅎ

 

보물은 찾는 재미인데, 혼자 다 찾아버리는 건, 친구들의 재미를 뺏어버리는 매너없는 행동이다.

그렇게 말해주어도 일부 별난 아이들은 막무가내다.

그래서 내년에는 정상에 모아놓고 OX퀴즈를 할까 생각중이다.

 

드디어 정상으로 올라왔다.

벗꽃은 떨어져도 아름답다.

분홍색 꽃비.

몇 해 전에 '꽃비'라는 이름을 가진 학생이 있었다.

매년 이맘때면 꽃비를 보게 되는데, 언제나 '꽃비'라는 이름을 가졌던 학생을 떠올리게 된다. 

 

보물을 찾겠다는 일념하에, 출발시간 보다 먼저 뛰듯이 올라오는 학생들이 좀 있다.

그래서 보물을 숨기는 손이 분주하였다.

 

산 정상에는 감천동 문화마을 안내판이 있다.

벽화가 그려진 가난한 마을인데, 이미 부산의 명소이다.

한 번 가본다고 한 것이 벌써 3달째이다. 

 

학교에서 옥녀봉 정상까지는 느긋하게 걸어와도 30분 정도면 충분하다.

그래서 옥녀봉은 아이들을 데리고 올라오기에 딱 좋은 야산이다.

 

이 옥녀봉이 가지는 의미는 특별하다.

이견이 조금 있기는 하지만, 까치고개에서 이어진 이 옥녀봉이 백두대간의 끝이라고 한다.

옥녀봉을 끝으로 백두대간이 동해로 숨어버린다고 한다.(백두대간 종주를 다룬 어느 블로그에서 봤던 기억이 가물거린다.)

 

옥녀봉 체육공원에서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은 봄에 특히나 아름답다.

벗꽃 터널을 보러 굳이 진해로 갈 필요가 없다.

  

표지판을 보니 우리 학교에서 정상까지 700m 였다.

길도 좋아서 심지어 슬리퍼를 신고 올라오는 황당한 학생도 간혹 있다.

그런 학생을 보면 난 꼭 이렇게 말을 해준다.

"야 임마! 발목 부러져."

 

체육공원에서 정상을 바라보며, 이곳은 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색을 다 갖추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세로로 찍어놓으니 또 다른 맛이 있다.

오늘의 베스트 샷으로 임명한다.

 

벗꽃 너머로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이들이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벗꽃이 반은 졌다. 

벗꽃이 모두 떨어지고 나면, 낮에는 제법 덥다.

뭐가 그리 급한지 반팔을 입고 다니는 아이들도 등장한다.

 

 

그렇게나 기다렸던 봄이었기에 벗꽃과 함께 떠나보내려니 서운하다.

내년에도 어김없이 봄이 오겠지만, 어느해 보다 특별했던 나만의 봄을 떠나보내자니 서운하다.

그 특별함은 블로그로 인해 바뀌어버린 나의 삶에 기인한다.

 

멀리 감천항을 바라보니 너무도 침침하다.

우리 학교에 부임한 처음부터 저 바다는 늘 그랬다. 

 

바로 감천화력발전소 때문에.

꼭 필요한 시설이지만, 그 댓가로 바다에 대한 낭만을 잃어버렸다.

화력발전소도 싫지만, 원자력 발전소는 더 싫다.

세상을 사랑해야겠다고 늘 다짐하지만, 발전소까지 사랑해야할까?

  

연세 지긋한 부부가 간식을 드시고 계셨다.

그 모습이 너무도 아름답게 느껴져 몰래 찍었다.

 

보물을 다 숨기고, 올라오는 아이들을 남겨둔 채 산을 내려왔다.

  

강아지도 산을 올라오고 있었고, 우리아이들도 강아지 마냥 신나게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었다.

올해 봄도 이렇게 지나가리라.

 

내려오는 길에 또다른 봄의 흔적들을 보며 다시 학교라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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