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주택에 살다가 처음으로 아파트로 이사하게 된 것이 벌써 20년 정도 되었다.
그 20년은 이웃없이 살아온 20년이기도 하다.
개인주택에 살 때에는 앞 집, 뒷 집, 옆 집 할 것 없이 모두가 이웃이었다.
그리고 그 집의 사람들 하나 하나가 어른이었고, 친구였고, 동생이었다.
소풍이라도 가게되면, 동네에서 구멍가게 하시던 할머니께서 과자봉지 하나를 기분좋게 덥썩 집어서 주시기도 하였고, 무화과 나무가 있는 집에서는 한 쟁반 가득 무화과를 담아 오시기도 하였다.
싸움이라도 나면 동네 어른들이 오셔서 나무람도 하시고 화해도 시켜주셨다.
이웃의 소중함은 유년의 나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현실이었다.
18살에 아파트로 이사오면서 소중한 그 모든 것이 사라졌다.
가끔 엘리베이터에서 같은 라인의 이웃을 만나면 시선을 피했다.
단 둘이 타기라도 하면 더욱 어색하였다.
그런 삶이 어느 순간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고, 그렇게 20년을 살게 되었다.
얼마 전이었다.
저녁 늦게 퇴근을 하고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게 되었다.
난감하게도 70세는 훌쩍 넘으신 것 같은 할머니와 동승을 하게 되었다.
역시나 시선을 어디다 둘 지 몰라 어색해 하던 찰나, 할머니가 10층에서 내리시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갑자기 나를 향해 몸을 돌리시더니, 허리까지 굽히시며 "안녕히 가세요."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당황해서 "아..., 예."하고 몸을 구부정히 숙였고, 그걸로 끝이었다.
그때의 감정을 뭐라고 표현할까?
당혹스러움에다 창피함과 뭔가 잘못되었다는 자괴감까지, 여러 감정이 뒤섞여 피어올랐다.
집에 들어와 한참을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명색이 나는 선생이 아닌가?'
'입으로만 아이들에게 인사 잘 해라고 외고만 있었구나.'
'앞으로는 엘리베이터에서 누구를 만나든지 먼저 인사해야겠다.'
그런 생각들을 실천으로 옮긴지 벌써 보름이 다 된 것 같다.
이제는 누가 타도 어색하지 않다.
나는 이른 아침, 혹는 늦은 밤에 엘리베이터를 주로 탄다.
그 때, 이웃을 만나면 먼저 "안녕하세요?"라고 점잖게 인사를 한다.
보통은 인사를 받은 분들도 기분좋게 인사를 받아준다.
이제야 4살된 아들놈에게, 그리고 학생들에게 조금 면목이 선다.
어른은 역시 어른이다.
아마 동년배가 나아게 그렇게 공손하게 인사를 했더라면,
'좀 특이한 사람이군'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갔을 일이었을텐데,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에 공손한 인사를 받고 나니 정신 번쩍드는 것을 보니.
나이를 먹을 수록 대접 못받는 것이 요즘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전통적인 가치를 온전히 갖고 계시는 어른은,
아직도 여전히 이시대의 젊은 사람들에게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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