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 베르베르, [카산드라의 거울]1,2권, 2010. 열린책들.
베르나르 베르베르 소설의 최고의 화두는 '언어'와 '생각'의 관계이다. 이는 전작인 [신]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난다. '언어 수집'을 취미로 갖고 있는 베르나르는 그 수집한 언어들을 서사적 구조 속에 녹여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런 점에서 베르나르의 소설은 베르나르에 의해 '수집된 언어들'의 박물관이다.
[카산드라의 거울]은 '생각' '언어' '미래' '민중'이라는 네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한 흥미로운 서사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 사사적 구조속에는 베르나르에게 영감을 주었던 수많은 '수집된 언어들'이 녹아있다. 줄거리는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내 입장에서는 이 소설이 갖는 서사적 구조는 그다지 큰 흥미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하는 [카산드라의 거울]을 읽으며 생각한 '생각'과 '언어'와 '미래'와 '민중'의 관계도이다.
인간이 여타의 생명들과 구분되는 큰 특질이 '생각'이다. 내 생각이 순수한 내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고, 외부조건에 의해 규정되었다고 하더라도, 여타의 생명들과 구분되는 특질임에는 변함이 없다.
생각을 말이나 글로 구체화시키지 않는다면, 생각은 곧 소멸되어버린다. 여기서 우리가 글을 쓰고 말을 해야하는 필요성이 성립된다.
생각이 언어(말과 글)를 낳는다. 언어(말과 글)가 생각을 강화시키기도 한다. 결국 생각과 언어는 상보 상생의 관계에 있다. 생각만 하던 것이 언어로 구체화될 때, 그것은 비로소 현실이 된다. 언어는 생각이 가지는 에너지를 훨씬 더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현실화된다. 그래서 우리는 언어를 사용할 때 각별한 주의를 해야한다.
'A가 싫다'는 생각이 생각으로만 남아 있을 때는 개선의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A가 싫어"라고 말하는 순간, 발화자의 '싫다'는 감정은 더욱 증폭되고, '싫다'는 감정은 A와 발화자 모두에게 현실이 되어버린다. 그 현실은 다시 발화자와 A 사이의 관계에 영향을 미쳐 '싫다'는 감정은 한 번 더 구체화되어버린다. 그러면 더 이상의 개선의 여지는 없다. 불교에서의 묵언수행은 그런 점에서 상당히 언어의 본질을 잘 파악한 수행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100이라는 긍정적 측면 뒤에는 100이라는 부정적 측면이 존재한다는 것이 베르나르의 사고방식이다. 예를 들자면 원자력 발전은 수력발전보다 원가면에서 수십 수백배의 장점을 가지지만, 그 위험성 면에서 역시 수십 수백배의 단점을 가진다. 언어의 부정적 측면 때문에 언어를 버리자는 것은 과학의 부정적 측면 때문에 과학을 버리자는 말만큼이나 어리석다.
인간은 과거를 사는 것도 미래를 사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현재만을 사는 존재가 인간이다. 미래는 현재가 쌓여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긍정적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긍적적 현재가 필요하다. 긍적적 현재를 만들기 위해서는 긍정의 언어가 필요하다. 긍정의 언어는 그 자체로 긍정의 생각을 끌어내는 힘을 갖고 있다.
이나라 정치판에 필요한 것은, 민중의 긍정적인 말들을 끌어내는 것이다. 긍정적인 말들을 끌어낼 수만 있다면 그 이 나라는 구제불능이 아니다. 끝없는 정치판에서의 부정들은 민중들의 긍정적인 생각과 말들을 막아버린다. 말로만 하는 상생이 아닌 말로 하는 상생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말은 생각이고, 생각의 모임이 미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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