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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를 통해 문화를 읽다, [욕망과 지혜의 문화 사전, 몸]

독서

by 빈배93 2011. 6. 9.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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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과 지혜의 문화 사전, 몸], 사오춘레이, 푸른숲, 2010.

 

, 어깨, 무릎, , 무릎, …….” 우리는 철이 들기도 전에 이런 노래를 불러왔다. 신체의 어디 하나 익숙하지 않은 곳은 없지만, 정작 잘 안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도 별로 없다.

 

샤오춘레이는 문헌을 통해 드러난 신체의 부분들에 주목하였다. 인간의 정신을 다루는 책이 거시적인 것이라면, 이 책은 철저히 미시적이다. 이 책은 신체의 부분들을 다룬다는 점에서는 미시적이지만, 거기에서 인간의 욕망과 문화를 읽어낸다는 점에서는 거시적이기도 하다.

 

조선 후기는 로 대표되는 성리학적 담론체계가 절정을 달린 시기이다. 그 틈을 비집고 태어난 것이 소품小品이다. 소품의 소재는 양반들이 결코 다루지 않았던, 일상의 작은 것들을 다루었다. 거대담론을 거부한 소품은 그런 점에서 혁명적이었고, 급기야 정조는 문체반정을 통해 소품체 작가로 지목된 이들을 탄압하였다.

 

인간의 윤리, 도덕, 정신과 사회의 현상들을 분석하는 거대담론이 주류인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닌 듯하다. 이 책은 그 거대담론의 무한한 확장성에 대한 소박한 반발이다. 물론 저자가 거대담론의 문제점을 직접 거론한 것은 아니다. 단지. 신체의 부분에 대한 관심을 책으로 담아내며 실천적인 노력을 보였을 뿐이다.

 

371쪽의 이 책을 저자는 8개월만에 탈고하였다. 엄청난 창작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이 정도로 책을 써내려 가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 책의 질은 결코 떨어지지 않으니, 한 번 감탄을 한다. 이 책은 문화 사전으로 스스로를 규명하고 있으면서도문학적 접근을 통해 창작된 문학으로 읽혀지기를 원하고 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신체의 세부 항목은 이렇다. 머리, 머리카락, , 얼굴, 눈썹, 눈빛, , 냄새, 체취, , , , 피부, 어깨, 유방, 허리, 배꼽, , 섹스, , 엉덩이, , , 다리, 무릎, , . 거의 신체의 모든 부위에 대한 서술이다. 이 책이 갖는 장점이라면 풍부한 자료이다작자는 동서양의 오랜 기간에 걸친 자료를 고루 보여주고자 노력했지만중국의 자료에 치우친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인용된 방대한 양의 자료는 작가의 성실한 노력을 충분히 대변한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371쪽의 책을 읽으며 내가 정리한 생각은 이렇다. 인간 신체의 부분 부분이 모두 하나의 상징이자 문화이다. 상징과 문화가 신체를 대신하여 자리잡는 순간, 인간의 신체는 더이상 신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신체 부위가 가지는 상징과 문화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미술, 음악, 문학 등의 예술 전반에 대한 이해의 지평이 넓어지리란 생각을 해본다. 신체의 부분이 가지는 상징과 문화는 거의가 성적인 것과 연결이 된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성희롱의 논란에 휩싸이는 것은, 인간의 몸이 가진 상징과 문화에 기인한다. 이책을 읽고 나니 여성들의 신체 어디든 접촉을 하는 것이 두렵다. 온몸 구석구석이 가진 성적인 의미가 떠올라서 말이다. 성희롱은 나쁜 것이지만, 불가피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마음을 통한 접촉이 최선이지 않을까하고 생각해본다.

 

이 책의 장점은 풍부한 자료이지만, 풍부한 자료가 읽는 내내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좀더 자료를 요약적을 제시했다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아래의 구절은 책을 읽으며 다시 음미하고픈 것들을 모은 것이다. 초록한 것을 보면 책읽는 사람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다. 내 스스로도 그간의 초록들을 살피면서 스스로의 정신적 편력을 관찰할 수 있기에 유익하다. 그래서 나에게 초록은 언제나 리뷰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

 

* 중세의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에 따르면, 사람의 몸은 조물주가 오랜 고심 끝에 만들었다고 한다. 아퀴나스는 식물과 인간이 모두 곧게 서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식물은 거꾸로 서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왜나하면 식물은 동물로 치면 입에 해당하는 부분이 위를 향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몸은 인간이 사는 세상과 똑같은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머리는 이 세상의 위, 곧 하늘을 향해 있고 하체는 아래, 곧 땅을 향해 있다. 인간을 제외한 나머지 동물은 인간과 식물의 중간 상태로, 머리와 배설기관이 평행을 이룬다.(중략) 땅에서 기어다니던 생활을 끝내고 몸을 일으켜 두 어깨 위로 머리를 치켜든 순간, 인류는 생물학적 진화를 끝내고 신학 또는 문화적 진화를 시작하게 되었다.(21)

 

* 입맞춤이 어떤 형태로 진화했든 본래의 취지를 벗어날 수는 없다. 입은 기본적으로 음식물과 만나는 장소이고, 우리의 성도 일종의 음식이다. 그러므로 입맞춤은 바로 나 아닌 누군가를 입속에 넣고 그 맛을 음미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연인들은 서로의 맛이 얼마나 달콤한지 알기 때문에 서로를 되씹고 받아들이며, 자기 안에서 상대를 느낀다. 이렇듯 풀뿌리든 사랑하는 연인이든, 모든 사물은 먼저 음식물이 되어야 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법이다.(147)

 

* 미국의 학자 매릴린 옐롬은 [유방의 역사]를 저술하여 학계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옐롬은 지금까지의 유방은 여성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그녀의 의견에 따르면, 그동안 여성의 유방은 아기의 눈에는 음식물로, 남자들의 눈에는 섹스의 상징으로, 그리고 의사들의 눈에는 종양이 들어있는 주머니로밖에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상인들의 눈에는 돈으로 보였으며,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성령의 상징으로, 정객들에게는 국가주의의 희생물로, 심리학자들에게는 잠재의식의 중심으로 여겨졌을 뿐이라는 것이다.(208)

 

 

* 아프리카의 원주민 여성들은 가슴을 드러내고, 고대 중국 여성들은 가슴을 동여맸으며, 현대 여성들은 가슴을 돋보이게 한다. 각각의 문화는 자신만의 유방을 창조하고 있다. 우리 시대의 유방 숭배 문화를 한 꺼풀씩 벗기다 보면 당신은 아마도 크게 실망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에 남는 것이라고는 그저 아득한 구멍인 암세포뿐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유방의 본질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보는 것은 모두 풍속일 뿐이니까.(215)

 

* 생식기가 바지와 치마 속으로 들어가자 언어에서도 그 자취가 사라져버렸다. 공공생활에서 성은 마치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된다. 그러나 성은 분명히 존재한다. 사람들은 결혼을 하고, 대를 이어갈 건강한 아이를 출산해야 한다. 그러므로 성을 없애는 것은 반인륜에 해당하는 범죄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그것을 가린다고 해도 단지 그 존재 방식이 바뀌는 것일 뿐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다. 망가진 수도꼭지를 손으로 막을 수 없듯, 다리 사이를 가리면 가릴수록 유방과 엉덩이, 허리, 어깨, 허벅지, 다리 등 온몸이 성감대로 변해버린다.(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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