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니까 청춘이다], 김난도, 쌤엔파커스, 2011.
이 책이 소위 '베스트셀러'라는 것을 안 것은 꽤나 오래되었다. 차일피일하다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이 책을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선생님의 잔소리'이다. 나는 선생이다. 그래서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는 듯 하면서도 새로웠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느낌은 '내 영혼이 목욕을 한 듯'하였다고나 할까? 이 책을 읽던 중 우연히 "[아프니까 청춘이다] 8개월만에 100만권 돌파!"라는 뉴스를 봤다.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정말 100만권이나 팔릴 만큼의 책인가?'를 자문해 본다. 그리고 '2011년의 대한민국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스스로 답해 본다. 2011년이 대한민국이 어떠하기에? 제목을 살짝 비틀자면, '아플 수 밖에 없는 청춘'이 득시글거린다. 대학입시에 모든 것을 저당 잡힌 12년. 취업란에 고통스러운 4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 그것이 오늘날 대한민국 젊은이의 현주소다. 그 아픈 청춘의 숫자에다 그와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사람들의 숫자를 합하면 100만권도 부족하지 싶다. 책과 담쌓은 분들 덕분에(?) 100만권만 팔려나간 것이 아닐까? 저자 김난도 교수는 책의 말미에 "이 책에 실은 글의 대부분은 그런 출발을 앞두고 있는 너를 생각하며 썼어. 내 아들에게 들려주지 못할 이야기라면 다른 집 자식에게도 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라고 고백을 한다. 결국 이 책은 아들에게 쓴 편지인 것이다. 이런 방식의 저술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김만중의 [구운몽]이 그랬고, 다산의 [유배지에서 쓴 편지]가 그렇다.(물론 [구운몽]은 그 대상이 아들이 아니고 어머니라는 차이가 있다. [유배지에서 쓴 편지]는 후대 박석무 선생이 다산이 아들에게 쓴 서간문을 책으로 엮어낸 것이다.) 내 가족에게 주는 글. 어느 누가 아무렇게나 쓸 수 있겠는가? [아프니까 청춘이다] 역시 그만큼 혼신의 힘을 다한 저술이다. 김난도 교수는 그 유명한 서울대학교에 재직하고 있다. 게다가 서울대에서 무슨 교수평가에서 1등이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난 사람이다. 그럼에도 책에서 풍기는 김난도 교수의 향기는 자상하고 겸손하다. 내가 재직하고 있는 고등학교에서도 매년 교사평가를 한다. 90명의 교사 중 수업만족도 1위를 한다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이다. 하물며 교직원 숫자가 훨씬 많은 서울대학교에서 1등을 했다는 것은 단지 수업만 잘해서 가능한 것은 아니다. 학생들과의 소통(누군가는 소통을 '상호이해'라고 풀이했다. 입에 발린 소통 말고 '상호이해'로.)과 그를 통한 아름다운 대화의 흔적이 이 책 곳곳에 녹아 있어 읽는 내내 참 따뜻했다. 그럼 김교수는 과연 어떤 조언들을 해주었을까? 저자는 이시대의 아들들에게 끊임없이 요구한다. 너무 조바심을 내지 말라고. 조금 늦어도 좋으니 정말로 크고 좋은 꽃을 피워내라고. 김교수가 이야기하는 인생시계라는 것이 있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를 하루 24시간에 비유해 보는 것인데, 인생시계에 적용해보면 대학졸업을 하는 시기는 7시 12분에 불과하다. 아침부터 조바심을 낼 필요가 없는 것이다. 꽃을 피워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하는가를 고민할 시기가 바로 대학을 졸업한 시기에 해야할 일이라고 조언을 하고 있다. 지금 내 책상에는 "11시 40분"이라고 쓰여진 쪽지가 붙어있다. 현재 나는 11시 40분이니, 점심먹기 전에 바짝 더 스스로를 채찍질해야 할 시간이란 생각을 해보았다. '비유'는 무엇을 생각하고 이해하기에 참으로 적절한 방법이다. 나의 대학시절을 잠시 이야기해야겠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90년대 국립대학의 등록금은 대략 100만원 정도였다. 친구들은 커피숍으로 편의점으로 혹은 노동현장으로 아르바이트를 다녔다. 그렇게 해서 한달에 버는 돈이 한달에 20∼30만원 정도 되었던 것 같다. 나는 대학시절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았다.(간혹 일시적인 아르바이트를 하긴 했다. 친척의 부탁으로 동생들 과외한 것, 전공과 관련된 번역이나 교정 정도가 다 였다. 전공과 관련된 아르바이트는 단가가 대단히 높았다. 신문사에서 한자 교정을 본적이 있었는데, 보름을 일하고 그당시 80만원을 받았았다. 모 박사논문에 쓰일 한문 문장을 보름에 걸쳐 번역해주고는 100만원을 받았다. 이런 아르바이트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교직에 있다보니, 안타까운 학생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대표적인 예가 "공부는 누구보다 열심히하는데, 성적은 늘 바닥에 있는 학생"이다. 한번씩 그런 학생을 상담하게 되는데, 나의 대답은 늘 이랬다. "그래도 열심히 하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잖아!" 김난도 교수의 말대로라면 결국 방법론의 문제인데, 그런 부분에서는 아직도 학생의 학습방법에 대한 파악이 안 되는 것이 나의 현주소이다. 김교수 역시 특정학생의 특정한 방법론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아 아쉽지만, 대략이라도 갈피를 잡게 된 것은 다행이다.
교사로서 가장 하기 어려운 말이 있다. "포기해라!" 그런데 김교수는 용감하게 그런 말을 했다.(사실 학교 현장에서 학생에게 이런 말을 하면 당장 학부모의 항의전화가 빗발친다.) 아무리 해도 안되면, 포기할 줄도 알아야하건만 우리 교육현장에서 "포기하라!"는 말을 입에 담는 것은 금기이다. 이 책을 읽은 수많은 학부모들이 조금은 자식의 포기에 대해 관대해질 수 있을까?(나는 아직 내 자식의 포기를 언급할 단계가 아니다. 2살, 4살이라서.) 나는 과연 내 자식의 포기에 대해 관대해질 수 있을까?
* 오히려 언뜻 글과 멀어 보이는 전공자가 글을 잘 쓰면 대단한 시너지 효과를 낸다. 많은 젊은이들이 존경하는 긴급구호 활동가 한비야 씨가 좋은 예다.(180)
'교직'에 있다는 것. '글쓰기'를 신봉한다는 것. '책'의 무한한 힘을 믿는다는 것. 이 세가지는 나와 김교수의 공통점이다.(물론 질적으로는 내가 한참 뒷전이지만.) 그래서 배울 점, 생각할 거리들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마구 쏟아져 나왔다. 글을 잘쓴다는 것이 주는 시너지 효과에 대한 글을 보며, 내가 블로그의 길로 접어든 것이 잘한 것이었구나는 생각을 해본다.
* 우리말 단어장은 지금도 적는다. 좋은 표현, 모르던 사자성어나 속담, 뜻은 알지만 실제로 글에 구사하지 못했던 단어 등을 적는다.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우리말 단어장을 가지고 다녀야 한다고 생각한다.(185)
지금 내 책상에는 우리말 단어장이 마련되었다. 좋은 것이 있으면 모방하는 것은 어느덧 나의 습성이 되어버렸다. 전부터 생각만 해오던 것을 실행하게 만들어주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내게 의미있다.
* 책은 하루에 한 권 정도 읽어요. 화장실, 이동하는 차 안 등 토막시간마다 책을 펼치죠. 매년 10월에 책 한 권씩 내는 게 목표이기 때문에 매일 200자 원고지 20∼30장 분량의 글을 써서 저장해둡니다. 이렇게 생활하다 보면 1인 다역을 할 수 있어요. 제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시간 없다’입니다.(201)
방학이 끝나고 개학을 하고보니 책 읽을 시간이 참 많다. 위의 글은 시골의사 박경철의 글을 인용한 것인데, 이것 역시 큰 자극이 되었다.(블로그하는 시간을 줄이고 독서에 매진할 수 있는 시간을 어떻게든 늘려볼 생각이다.) 매일 원고지 20∼30장까지는 아니더라고 글을 쓰고 있는 스스로를 대견하게 생각해보기도 하고.
* 시간관리란 무엇인가를 용기 있게 포기하는 것이다. (중략) 곁가지가 많으면 큰 나무가 되지 못한다.(203)
용감한 포기. 이 책을 읽는 내내 나의 화두이기도 했다. 나 자신에게, 내 아이에게, 내 학생들에게 "포기하라!"고 말해줄 경험과 용기가 나에게도 솟아날 때가 언젠가는 오지 않을까?
그 밖에 생각할거리들을 제시하며 글을 접는다.
* 그렇다. 스물넷이 고작 아침 7시 12분이다. 집을 막 나서려는 순간이다.(19)
* 거창고등학교의 십계명(23)
1.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2.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3.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4. 모든 조건이 갖춰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5. 앞다투어 모여드는 곳에는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6.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7. 사회적 존경을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8.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9.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의심치말고 가라.
10.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 너무 일찍 출세하면 나태해지고 오만해지기 쉽다. 나태하므로 더 이상의 발전이 없고, 오만하므로 적이 많아진다. 그러니 더 이상 성공하기 어렵고, 종국에는 이른 출세가 불행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35)
*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도시경쟁력을 연구하는 리드앤리더의 김민주 대표는 “여행이란 사회적 임사 체험이다.”라고 했다. 생각할수록 좋은 비유다. 그렇다. 내가 있던 곳의 사람들에게 나는 ‘없는 사람’, 즉 죽은 사람이 된다. 여행은 자신의 부재가 나의 지인과 공동체에 어떤 의미였나를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다.(중략) 사람이란 객지에서야 비로소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는 모양이다. 여행이 또 좋은 것은, 내가 무척 당연하다고 여겼던 일들이 사실은 전혀 당연한 것이 아님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특히 외국에 갔을 때 더욱 그렇다.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살아왔는가?” 이렇듯 어떠한 편견이나 전제없이, 오래도록 품어왔던 그대의 가치관에 의문을제기할 수 있는 기회를, 여행은 준다.(74)
* 인간관계란 좋은 파트너를 ‘선택’하는 일이 아니라, 좋은 파트너가 ‘되는’ 일이다.(중략)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꾸만 ‘밑지지 않는’ 선택을 하려고 한다. 하지만 관계란 호혜적인 것이기 때문에 상대방도 밑지지 않겠다고 나오는 순간, 서로 행복할 수 있는 선택이 불가능해져 버린다.(106)
*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시기에 다가섰는데, 막상 그 선택지는 거의 무한대로 다양하다. 무한대에 가까웠던 선택지가 하나둘 줄어들 때, 우리는 나를 먹는다. 선택의 여지가 줄어들면 당연히 고민의 폭도 좁아진다. 그러므로 어른들은 “제일 좋은 시기에 무슨 걱정이냐?”고 말할 자격이 없다.(129)
* 감옥과 수도원의 차이는 불평을 하느냐 감사를 하느냐에 달려 있다.(136)
* 수많은 작심삼일이 존재하는 진짜 이유는 그 결의가 실은 오늘의 나태를 합리화하는 방편이었기 때문이다. 연습은 많은 ‘오늘’들이 모여서 만들어진다. 내일은 없다. 그러므로 내일부터가 아니라, 오늘 조금이라도 한번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156)
* 인터넷뉴스의 근본적인 문제는 ‘자기주도적’ 정보검색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중략) 그 결과는? 편협한 정보만을 접하게 된다. (중략) 반면 신문에는 내가 관심 없는 정보일지라도 일단 종이 가득 실려 있기 때문에, 요즘 무엇이 중요한 이슈인지 쉽게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자세한 내용은 일지 않고 지면을 넘기더라도 기사의 제목이나 면 구성을 흘깃 넘겨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맥락적 정보를 얻을 수 있다.(175)
* 게임보다는 독서를, 인터넷 서핑보다는 신문 읽기를, TV 시청보다는 영화 감상을, (중략) 늦잠보다는 피로를 푸는 토막잠을 택한다.(206)
* 실천하지 못하는 결심이란, 한낱 자위일 뿐이거든. 자기를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란 건 말이지, 어느 날 좋은 글 읽고 느낀 게 있었다고 확 생기는 그런 능력이 아니야. 하루하루 조금씩, 조금씩 실천하고 살짝살짝 늘어가는 그런 능력인 거야.(231)
* 새벽부터 흔들어 깨우는 그 목소리가 한없이 원망스러웠지만, 엄마는 항상 나보다 늦게 잠들고 일찍 깨야 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곤히 잠들어 있는 엄마 모습을 본 적이 몇 번이나 됐던가?(234)
* 브랜드의 핵심은 ‘하나의 초점’이다. 그대가 가장 잘하는 것, 그 한 가지에 집중해 그대만의 이야기를 들려주어라.(273)
*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면, 그냥 가라.(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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