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출퇴근 시간에 1000권을 읽고 난 후 얻은 것

독서

by 빈배93 2011. 8. 16. 13:52

본문

글 읽기는 신나는 놀이다

 

어떤 난해한 이론도 결국은 현상과 경험을 설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경험적 서술은 이론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닐 수 있습니다. 필자는 아마추어 독서가입니다. 서투른 독서론의 전개보다는 독서와 관련된 개인적 체험들을 서술하는 것이 독서문화의 진흥에 기여하는 최선이 아닐까 합니다.

 

공자, 정약용, 신영복, 그리고 박석무

 

『논어論語』양화편陽貨篇에 공자의 이런 말이 있습니다.

 

“배부르게 먹고 하루 해를 마치면서 마음을 쓰는 곳이 없다면 어렵다. 장기와 바둑이라도 있지 않은가? 그것을 하는 것도 그만두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아무 하는 일 없이 놀기만 하면 결코 즐거울 수 없습니다. 즐겁게 살기 위해서는 소일거리를 찾아야합니다. 공자는 즐겁기만 한 예로 장기와 바둑을 들었습니다만, 즐거우면서 유익하다면 더 좋겠지요. 그런 것에 무엇이 있을까요? 바로 글 읽기입니다.

 

다산 정약용은 방대한 독서 끝에 600권이나 되는 『여유당전서』를 썼습니다. 그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오랜 귀양 생활이었습니다. 궁벽한 시골에서 죄인이 할 일이 무엇이 있었겠습니까? 근자에 신영복 선생이나 박석무 선생도 그러한 경우입니다. 무료하고 적적할 때 독서에 탐닉할 수 있는 최상의 환경이 만들어집니다.

 

감옥이었던 지하철이 도서관이 되다

 

저는 매일 지하철로 출퇴근을 합니다. 집에서 직장까지 1시간이 소요되니, 매일 왕복 2시간을 지하철이라는 감옥에 갇혀있는 셈입니다. 그게 벌써 12년째입니다. 그런데 지하철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것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앞 좌석의 예쁜 다리를 보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요. 무료한 시간을 손쉽게 보내는 흔한 방법이 휴대폰 놀이입니다. 저도 휴대폰 오락, 그 중에 야구 오락을 버튼이 고장날 때까지 해대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대체 뭘 하고 있는거야? 내게 남은 것이 뭐지? 뭔가 좀 의미있는 일를 해보자.’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휴대폰 오락을 끊고, 읽을거리를 찾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스포츠 신문을 읽었어요. 출퇴근 2시간을 보내려면 신문의 첫 글자부터 마지막 글자까지 다 읽어야 했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 일반 신문으로 갈아탔습니다. 그러다가 그마저 지겨워지더군요. 그래서 만화책으로 갈아탔습니다. 퇴근하면 무조건 만화방으로 가서 2시간을 읽을 만화책을 빌렸습니다. 몇 달이 지나자 더 이상 읽고 싶은 만화책이 없더군요. 그래서 다음에는 무협지로 갈아탔습니다. 한 6개월을 읽으니, 정말 그 내용이 그 내용이더군요. 한마디로 재미가 없어졌지요. 그래서 갈아탄 것이 학교 도서관에 있는 소설책이었습니다. 제가 교사라 무한 대출이 가능했습니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부터 시작해서 장편이란 장편은 모조리 섭렵했습니다. 책을 선택하는 괴로움을 벗어나기에는 장편이 최고였습니다. 그 다음에는 선택의 괴로움을 피하기 위해 작가별로 책을 섭렵하였습니다. 이문열, 이인화, 조정래, 이외수, 베르나르 베르베르, 파울로 코엘료…. 그마저 재미있게 읽을 소설이 줄어들자, 분야를 넓혔습니다. 사회학, 심리학, 철학으로까지. 그게 오늘날까지 변화해온 저의 독서여정입니다.

 

직장생활을 12년을 하였으니, 하루에 2시간씩 최소 10년은 책을 읽어온 셈입니다. 그간 읽은 책이 몇 권인지 알 수는 없으나 대략 일주일에 2권을 읽어왔으니, 일 년에 100권, 10년이면 1,000권 정도는 읽은 셈입니다. 전에 학교 도서관에 가서 일 년간 읽은 책의 목록을 조회해봤더니 120권이더군요. 대충 연간 100권을 읽었다고 말하면, 과장 없는 사실일 것 같습니다. 물론 만화책과 무협지는 빼고요.

 

1000권이 넘는 책을 읽고서 얻은 것은 무엇인가?

 

그렇게 자문을 하고서 생각을 해보니 얻은 게 별로 없습니다. 꼭 말해야 한다면 읽을 당시의 ‘즐거움’과 재미있게 읽을 책을 고를 ‘안목’ 정도랄까. ‘책을 읽으면 뭐 남는 게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하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질문에 저는 이런 대답을 하고 싶습니다.

 

즐거워야 얻는 것이 있다

 

“책을 읽고 꼭 무엇을 얻어야 하나요? 즐거웠으면 된 것이 아닌가요? 읽은 것을 머리 속에 남겨서, 그걸 어떻게 써먹고 하는 생각을 한다면, 그건 독서가 아니라 공부죠. 전 독서는 좋아하지만 공부는 싫어요. 그래서 저는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을 고릅니다. 읽다가 재미가 없으면 그냥 ‘휙’ 던져버립니다. 독서의 양이 늘어가면, 전에는 재미없던 것이 재미있어지기도 하고, 전혀 원하지 않았지만, 어떤 분야에 해박한 정도는 아니라도, 토론할 만큼의 지식이 쌓여 있기도 하더라구요. 언젠가 어느 유명한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재미있다고 생각하면서 읽는 것이 아니면 그 책에서 얻는 이익이 적다.”

 

정말 근사한 말이지 않습니까? 이게 저의 개똥 독서철학입니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면 그 다음은 생각하지 않아요.

 

즐거운 독서의 적,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

 

우리 학생들이 독서활동과 관련해 반드시 가입하고 기록해야 하는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원래의 의도는 좋은 것이었겠지요. 아이들이 책을 읽게하고, 정신적 성장하게 도와주겠다는 의도였겠지요. 그런데 이게 아주 잘못되었습니다. 독서가 입시관계자들에게 잘 보이려는 도구가 되어버렸어요. 아이들은 희망 학과와 관련된 책을 읽고 그 기록을 시스템에 입력합니다. 아이들에게 그런 행위가 즐거운 놀이일까요? 위한 고통스러운 몸부림일까요? 책을 대학가기 위한 도구로 말고, 즐겁게 놀 수 있는 도구로 인식하게 해준다면. 그 다음은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저를 보세요. 만화책에서 철학책까지 왔잖아요. 독서량이 쌓이다보면 어느 순간 내 수준이 올라가고, 이전에 재미있던 책이 재미가 없어지기도하고, 읽을 엄두를 조차 내지 못했던 책이 재미있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떤 책을 선택해야 하나?

 

무조건 재미있는 책을 읽으세요. 성인이라면 소위 빨간책(?)도 좋습니다. 저는 책에는 악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재미를 붙여서 차츰 영역을 넓혀가면 현대인도 르네상스형 지식인이 될 수 있습니다. 제가 한문교사인데, 수업시간 철학, 사회학, 지리학 이야기들을 많이 해요. 아이들이 ‘지식인’이라고 별명을 붙여주더군요.(웃음!) 한문선생이 한자만 가르친다면 얼마나 아이들이 고통스럽겠습니다. 제 독서관의 연장선상에서 ‘재미없는 수업은 범죄’라고 새학기 첫 수업시간에 선언을 했습니다. 재미있는 수업을 위해서라도 재미있는 책을 읽고, 재미있게 표현해야겠지요.

 

정리: 책읽기에서 글쓰기로, 글쓰기에서 책읽기로

 

하나, 처음부터 수준 높은 책에서 재미를 찾지 마세요. 걷지도 못하는데 날 수는 없잖아요?

둘, 읽는 재미 그 이상을 바라지 마세요. 책읽기가 노동이 되고 책과 멀어집니다.

셋, 그냥 읽는 행위 자체를 즐기세요. 그러다보면 더 큰 자극이 필요해집니다. 그것이 바로 지적능력이 한 단계 진화했다는 표지입니다.

넷, 책을 많이 읽다보면, 독후감에 대한 고민이 생깁니다. 독후감을 쓰다보면 글쓰기와 관련된 책, 생각하기와 관련된 책(철학서)으로 관심의 영역이 넓어질 겁니다.

 

침대는 가구가 아니고 과학이라구요? 책읽기는 공부가 아니고 놀이입니다!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