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풍경』, 조정래, 해냄, 2011. 71∼125쪽.
[20년을 비가 내리는 땅]은 조정래의 1971년 작이다. 70년대는 군부독재가 서슬 퍼랬던 시절이다. 이런 소설을 발표한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다.(사실 조정래는 늘 문제작들을 써내었고, 그때마다 사상논쟁에 시달렸기에 새로울 것이 없기도 하다.) 조정래는 무슨 이야기를 한 것일까?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한 것일까?
주인공 이중현은 전직 월간잡지사의 기자였다. 아버지는 여순사건 때 반란군으로 집을 나서 행방불명이 되었다. 어머니는 반란군의 남편을 둔 죄고 모진 고문을 당한 끝에 자살을 하였다. 불행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주변 사람들의 냉대에도 꿋꿋히 살아가려 노력하지만 뜻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사고로 하나 뿐인 동생마저 잃고, 취업은 면접에서 번번히 낙방을 한다.(중현은 당시 그 이유를 모른채 답답해한다.) 결혼을 했으나, 제대로 된 직장이 없어 아내의 출산에 쓸 돈조차 없다. 우연히 한 사장이라는 출판업자를 만나서 아내의 출산비용을 빌리고 한사장의 출판사에 취업까지 되는 행운이 찾아왔으나, 그것은 또다른 불행의 시작이었다. 한 사장이 바로 고정간첩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중현은 무죄임에도 아버지의 전력과 국가의 위신 때문에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을 한다. 아내와의 옥중 면담 장면을 마지막으로 이 소설은 끝이 난다.
소설의 줄거리를 정리해보면 [20년을 비가 내리는 땅]이라는 제목이 갖는 함의가 선명해진다. ‘20년’은 이중현이 부모를 잃고 살아온 세월이다. ‘비’는 ‘눈물’이라는 의미고, ‘땅’은 그가 처한 상황이다. 소위 ‘빨갱이’ 아버지를 둔 이중현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늘 울 수밖에 없는 상황에 던져진 것이다. 이중현에게 아버지는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굴레였다.
반공이 국시였던 시절.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붉은 색조차 금기였던 시절. 그 시절에 그런 아버지의 자식들은 어떤 고난을 겪었을까? 우리는 중현의 고난을 통해 그 대략을 살펴볼 수 있다. 가족도 이웃도 사회도 모두가 등돌려버린 세상에 서야만하는 그 고난을 말이다.
중현은 일종의 ‘마녀사냥’을 당하였다. 마녀사냥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술수일 뿐이다. 하지만 늘 대다수의 국민을 위한 것으로 치장된다. 확률적으로 이야기 해보자. 진짜 마녀를 잡을 확률이 99%라고 가정하자. 10000명의 마녀를 잡아들이면 그 중 100명은 마녀가 아니다. 제대로 된 국가라면 단 한명의 억울한 피해자라도 생기면 안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그 100명을 두고 어쩔 수 없었던 희생이라고 말해온 것이 우리의 역사이다. 그 100명 중에 한 사례가 소설 속에서 형상화 된 이중현 삶이다.
어느 책에선가 이런 말을 들었다. “100명의 범인을 잡는 것보다 한 명의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그러나 자문해보자. 나의 견해는 항상 옳기만 한 것인지. 우리는 또 다른 이름의 ‘마녀사냥’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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