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풍경』, 조정래, 해냄, 2011.
내 국민학교(지금은 초등학교라고 하지만, 나는 초등학교라 불리던 시절을 보냈다.) 4학년 때의 일이다. 놀러 나갔다 갑자기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절뚝거리며 집에 돌아와서 “엄마, 내 다리가 이상해.”라고 말을 하였다. 어머니가 다리 길이를 맞추어보셨고, 내 한 쪽 다리가 빠져버린 것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나를 들쳐 업고 병원으로 뛰셨다. 집에서 병원까지는 꽤나 먼 거리였고, 육교를 오르내리기도 하셨다. 당시 어머니는 디스크로 심하게 고생을 하고 계셨다.(물론 지금도 어머니는 허리가 아주 안 좋으시다. 거의 매주 정형외과에서 주사를 맞으실 정도로.) 그게 벌써 25년도 더 된 일이건만, 아직도 가끔은 어머니와 그 이야기를 하곤 한다. 눈물 날 정도의 어머니의 사랑은 그 뿐만이 아니지만.
[청산댁]은 조정래의 1972년 작이다. 주인공 청산댁은 일제시대 징용을 나간 남편과 힘들게 재회하지만, 다시 한국전쟁에 나선 남편을 결국 잃는다. 청산댁에게 남은 자식들은 아들 둘이었다. 그마저 한명은 병치레 끝에 불구가 되었고. 자식을 위해 억척스레 살며 독종소리도 마지 않았다. 사지 멀쩡한 둘째 만득이를 월남전 때문에 잃고, 남아있는 손자의 돌잔치를 위해 또 다시 일어서서 일을 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소설 초반 청산댁이 월남전에 참전한 아들 자랑을 할 때부터 내심 불안했다. 그리고 전사통지서를 받는 순간, 그럴 줄 알았지만, 슬펐다. 소설은 청산댁의 기구한 삶을 그려내고 있다. 남편과의 사별, 자식과의 사별, 병으로 죽은 아이들의 이야기가 계속된다. 작품을 읽으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소설 말미에 청산댁의 중얼거림은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전생에 무신 악헌 죄를 짓고 나서 요리 복 쪼가리도 웂는고. 한평생 살기가 요리도 험허고 기구헐 수가 있당가. 이 새끼 땀새 죽어뿔지도 못허고……”
[청산댁]은 조정래 표 감동 스토리의 전형을 보여준다. 뒷날 장편소설로 나아갈 단초가 되는 것도 같다. 일제치하, 한국전쟁, 그리고 월남전. 바로 내 부모님 세대의 이야기이다. 70년대에 태어난 나로서는 안다고는 하지만 사무치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물론 책으로 영화로 많이 봐서 어느 정도 아는 부분도 있지만, 직접 겪은 것과는 전혀 다른 감상을 가지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전쟁 통에 남편을 잃고, 월남전에서 아들을 잃고, 그래도 남은 손자를 위해 다시 일어서야했던 우리의 어머니. 이만큼 기구한 팔자를 가진 분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의 부모님 세대는 다들 청산댁의 삶의 한 부분씩은 공유하고 계신다. 그래서 이 소설이 진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닐까?
뼈가 으스러질 정도로 힘든 삶을 살아온 청산댁을 보며 ‘지금의 나는 너무 편하고 쉽게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부모 노릇 너무 쉽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가련하고 아름다운 우리의 부모님’이 떠올랐다.
내 피 속에, 혹은 한국인의 피 속에는 그런 우리네 부모님의 피가 면면이 끊어지지 않고 흐르고 있다.(이제는 동맥경화로 그것이 막혀버렸다고 주장하는 분도 있겠지만, 나는 그래도 흐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부정父情 혹은 모정母情으로 불리는 한국인의 아름다운 정화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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