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의 아픔을 몸소 보여주다, 부산근대역사관
부산근대역사관(부산시 중구 대청로 99번지)은 1929년에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으로 건립되었다. 1949년부터는 미문화원으로 사용되었고, 1999년에야 부산시로 반환되었다. 70년을 남의 나라 건물로 사용되다가, 1999년에야 돌려받았다. 2003년에 부산근대역사관으로 꾸며졌다. 부산근대역사관은 그 자체가 부산 근대사의 고달픔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 부산근대역사관 표지판. 표지판 없이는 찾기가 쉽지 않다.
조선인 혹은 한국인이 다가서기 어려운 건물에서 소풍장소로
비를 피해서 온 소풍 온 것은 우리 반만이 아니었다. 일본과 미국이라는 외세의 상징이었던 이 건물이, 이제는 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 모두의 역사교육의 장이 되었다. 수백 명에 달하는 학생들은 시끄러웠다. 직원이 “좀 조용히 하세요”라고 말해도, 그 소란스러움은 별 변화가 없다. 조선인 혹은 한국인이라면 근접하기 조차 힘들었던 건물에서, 아이들이 마음껏 떠들어도 제지하기 어려운 건물로 바뀌었다. 그 속에서 역사의 변화를 읽는다면, 너무 호들갑스러운가? “그래도 얘들아, 좀 조용히 하렴.”
▲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 지점이었던 부산근대역사관
대청동은 사신접대를 위한 연향대청에서 유래한 이름
부산근대역사관이 위치한 대청동은 초량왜관의 북문에 위치했다. 일본 사신을 맞이하여 연회를 베풀던 연향대청宴享臺廳이 있었고, 때문에 이 지역이 대청동이라 불리게 되었다. 일본 때문에 대청동이라 불리게 된 이곳에, 일본인이 지은 동양척식주식회사 건물에, 부산근대역사관이 들어섰다는 것은 의미가 없을래야 없을 수 없다.
▲ 용두산 공원에 있는 초량왜관에 대한 안내판
가장 볼만한 것은 3층 '부산의 근대거리'
전시관은 총 3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1층은 안내카운터와 자료실이 있어서 별로 볼 것이 없다. 2층은 ‘부산의 근대개항’ ‘일제의 부산 수탈’ ‘근대도시 부산’이라는 3개의 전시실로 꾸며져 있다. 각종 한문 문서, 일본 문서, 지도, 기타 유물 등이 있다. 사진을 찍으며 꼼꼼히 보았으나 그다지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3층에는 ‘동양척식주식회사’ ‘근현대 한미관계’ ‘부산의 근대거리’로 구성이 되어있다. 특히 볼만한 것이 ‘부산의 근대거리’이다. 당연히 아이들도 이곳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머물렀다. 사진도 찍고, 재현해 놓은 전차 안에도 들어가보고.
▲ 3층 전시실에 있는 '부산의 근대거리'. 멀리 전차에 사내 아이들이 타고 있다. 왼쪽편으로 보이는 전봇대도 옛날 그 모습이다.
▲ '부산의 근대거리'에 있는 과자 가게. '대화옥大和屋'이란 가게 안에는 케익을 비롯한 과자들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 가구점. 가구점 안으로 가구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문을 열어봤으나, 열리지는 않았다.
고등학생보다 초등학생이 더 잘 구경하다
옆에 있던 초등학교 선생님이 “얘들아, 너희들이 본 것 중에 흥미로운 것에 대한 설명 3개를 써!”라고 말씀하셨다. 초등학생들은 저마다 전시장 곳곳에서 열심히 썼다. 반면 우리 고등학생들은 산책하는 속도로 휙 돌아보고는, “5분만에 다 봤어요”라고 웃으며 말한다. 뭘 억지로 배우게 하는 것도 문제이다. 하지만 뭘 배우게 유도할 형편이 못되는 내 심사는 씁쓸하기만 했다. 나도 “얘들아, 너희들도 초등학생들처럼 설명 3개 써라.”고 말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아이들은 “에이, 선생님 왜 그러세요?”라고 웃어버렸을 것이다.
▲ 일제 강점기에 판매된 동래온천 기념품. 우리집이 동래온천이 있는 온천장이라 특별히 더 관심이 갔다.
▲ 하자마 후사타로우의 동래별장은 지금도 사진 속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현재는 한정식을 파는 음식점이다. 온천장에 있는 별장인데, 지난 겨울 라이딩 중 우연히 발견하고, 그 건물과 정원이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렇게 박물관에서 사진으로 만나니 더 반갑다.
▲ 학도병 일장기. 징병으로 끌려간 조선 사람들의 사기를 높이고 일본 천황을 위해 장렬히 싸우게 하기 위해 가슴에 부착할 용도로 만들어졌다. '무운장구武運長久', '진충보국盡忠報國' 의 문구는 천황을 위한 것이었다. 왠지 섬뜩한 느낌이 일어난다.
▲ 1908년에 개설된 동양척식주식회사 경성지점 축소 모형. 축소비율은 60:1. 초등학생에게 인기가 좋았던 전시물이었다.
▲ 1층에 전시된 각종 행사와 관련된 액자들.
▲ 각종 근대 유물. 순서대로 영사기, 라디오, 전화기.
▲ 1920년대 아이들의 찍은 사진. 저 아이들 중 살아 있는 아이들(?)이 얼마나 될까?
▲ 1930년대 빨래터.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광경이다.
박물관에 가서 재미있게 노는 방법, 더 연구해야
박물관에 가서 재미있게 노는 방법. 이런 류의 책을 한 번 찾아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단 내 아들 딸을 대상으로 실험을 해보고, 좋으면 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써먹어야겠다. 비가 와서 어쩔 수 없이 찾아온 부산 근대역사관, 덕분에 교사로서 아버지로서 어떻게 우리 아이들을 박물관에서 더 재미있게 놀릴까하는 고민을 얻어왔다. 거기에 다 우리 동네의 역사도 조금은 더 알고서.
블로그가 재미있나요? (0) | 2011.11.02 |
---|---|
공원은 인위일지라도 낙엽은 자연이다, 금정체육공원의 만추 (0) | 2011.10.31 |
[부산/중구] 부산의 역사가 퇴적된 곳, 용두산 공원 (0) | 2011.10.24 |
생애 첫 맛집 포스팅, 근데 이거 맛집 포스팅 맞아? (0) | 2011.10.17 |
생의 마지막을 향한 억새꽃의 손짓, [승학산 억새밭] (0) | 2011.1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