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소풍날을 어찌할까?
지난 10월 21일(금)은 가을 소풍날이었다. '맥도(부산시 강서구 대저 2동 소재)'로 가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일을 어쩌나? 오후부터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와는 달리 아침부터 비가 많이 내렸고, 그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아침 일찍부터 반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반장아! 전화 돌려라. 장소 변경이다. 장소는 '부산 근대 역사관(중구 대청로 99번지 소재)'이다." 비오는 날 소풍은 박물관이 제격이다.
가까운 곳으로만 소풍을 가려는 아이들
소풍 장소를 정하기 위한 논의부터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이들은 그저 가까운 곳으로만 가려했다. 어디에 가고 싶다는 마음도 모아지지 않았다. 말 꽤나 하는 친구가 제시한 곳이 맥도였고, 아이들은 그냥 동의했다. 단지 제 집과 가깝다는 이유였다. 아이들 이전에, 알찬 프로그램을 마련하지 못한 내 탓도 단단히 한 몫 했다.
30년만에 올라간 용두산 공원
지하철 남포동 역에 내렸다. '부산 근대 역사관'은 용두산 공원 서쪽 아래쪽에 있다. 용두산 공원으로 올라갔다. 5개의 에스컬레이터가 편하게 나를 공원까지 데려다 준다. 본가에 아버지와 동생 그리고 내가 용두산 공원에서 찍은 사진이 걸려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날 이후로 처음 가는 것이다. 용두산 공원에 오른 것이 거의 30년 만이다. 서울에서 일본에서 중국에서, 용두산 공원을 보러 온다. 부산에 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안 가게 되는 곳이 용두산 공원이다.
▲ 용두산 공원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총 5개가 설치되어 있다. 엘리베이터 옆으로는 각종 가게들이 즐비하다.
용두산 공원에도 불상이 있다
두번째던가 세번째던가? 에스컬레이터 옆에 불상이 하나 모셔져 있어, 눈길을 끈다. 잠시 내려서 보니, '용두산 용두불'이다. 불상 옆에는 봉안기가 있어 그 사연을 알 수 있다. 용두불은 항마촉지불이다. 항마촉지란 부처가 깨달음의 순간에 취한 손의 모양이고, 그 깨달음의 순간에 악귀를 물리쳤다고 한다. 피난시절 유명을 달리한 영혼을 천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용두불을 감싸고 있는 나뭇잎이 마치 푸른 외투같다.
▲ 미타 선원 앞에 놓여 있는 '용두산 용두불'. 피난 중에 유명을 달리한 영혼을 천도하기 위해 봉안되었다.
남포동 중앙동은 바다를 매립한 곳
용두산 공원과 그 일대는 과거 초량왜관이 있었던 곳이다. 무려 500명 가까이 되는 일본인이 상주하였다고 하니 얼마나 그 규모가 컸는지 짐작이 간다. 초량왜관의 면적은 현재 용두산 공원 면적의 5배 정도였다.17∼18세기 한일교류의 중심지이자, 동북아 물류의 중심지로 역할을 했다고 한다. 1902년 이전에는 용두산 아래가 바다였다. 을사늑약 후 초량왜관이 일본인 거류지로 바뀌자, 부산매축주식회사를 설립하여, 바다를 메워서 중앙동 남포동 일대가 확장되었다.
▲ 용두산 공원에서 바라본 부산항. 바다가 그리 멀지는 않다.
용두산 혹은 송현산, 용두산 공원 혹은 우남공원
부산시 중구 광복동 2가 1-2번지. 용두산 공원의 주소이다. 용두산은 소나무가 많아서 옛날에는 '송현산松峴山'으로 불리기도 했다. 용두산 공원은 한 때 이승만의 호를 따서 우남공원으로 불리기도 했다. 용두산은 높이가 69m에 불과하지만, 바닷가 평지 위에 우뚝 솟아 있어 부산항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더 멀고 넓게 보려면 높이 120m의 부산타워에 올라가면 된다. 이순신 동상, 꽃시계, 시민의 종이 이곳의 볼거리이다. 30년 전 저 꽃시계 앞에서 아버지와 동생과 함께 사진을 찍었던 추억이 지금도 본가에 남아있다. 돈을 받고 사진을 찍어주던 분들이 사라졌다는 것을 빼고는, 그때나 지금이나 이 곳 용두산 공원은 별로 변한 것이 없는 듯 하다.
▲ 용두산 공원 비석을 중심으로 시민의 종이 걸려있는 종각과 부산타워가 보인다.
▲ 부산 시민의 종. 부산에서는 이 종으로 연말 재야의 종소리를 울려퍼뜨린다. 다녀온 사람들에 의하면 사람의 물결에 휩쓸려 떠다니게 된다고 한다.
▲ 높이 120m의 부산타워. 아직도 한 번도 올라가 본적은 없다.
▲ 꽃시계. 30년 전 이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30년이 흘렀건만 변한 것은, 사진찍어주는 사람이 없어졌다는 것 빼고는, 별로 없는 듯 하다.
▲ 용두산 공원에서 근대역사 박물관 가는 길에 있는 '한국탈방'. 이른 시간 탓인지 문이 닫혀있었다.
여행은 공간에서 흔적을 찾고 남기는 것
모든 공간에는 시간의 흔적이 퇴적된다. 그래서 어느 하나 허투루 보아 넘길 수 없다. 특히나 용두산 공원같이 부산의 역사가 고스란히 퇴적된 장소라면. 조선시대부터 이어져온 일본의 흔적 위를 이제는 중국인을 비롯한 외국인들이 구경을 온다. 개인적으로는 30년 전의 추억에 30년 뒤의 감회를 남기고 돌아왔다. 먼 곳을 가는 여행도 좋지만, 내 주변에도 알아보면, 특별한 공간이 많다. 우리는 그곳에 다녀 옮으로써 역사의 흔적을 발견하고, 다시 그 위에 먼지같은 나의 흔적을 쌓게 된다. 그것이 여행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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