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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저부터 잡아요"라고 말한 학생의 수줍은 반성

학교2

by 빈배93 2011. 11. 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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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부장님은 그 유명한 '학주'다. 물론 공식 명칭은 생활지도부장이지만, '학주'가 더 익숙한 것은 내가 그 시절에 학교에 다녔기 때문일 것이다. 누가 시킨것도 아니지만 하루도 빠지지 않고 교문지도를 하신다. 그러다보면 아침부터 인상 쓸 일도 가끔 있다. 몇 일전 우리 부장님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는 소설의 형식을 빌려서 전달하려한다.

 

    SS여고 학주는 좀 특이했다. 일단 담당 과목부터 그랬다. 음악! 음악과 학주의 조합은 확실히 낯설다. SS여고의 등교시간에는 항상 클레식 음악이 흐른다. 아이들이 인사를 하지 않아도 학주는 먼저 아이들에게 인사를 한다. 학주는 학주의 본연의 임무 만큼이나, 아이들의 기분 좋은 아침 등교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날도 여느때 처럼 학주는 아침 07시 30분에 정문에 떡하니 섰다. 고개를 들어 정문을 바라보는데, 교복을 제대로 갖추어입지 않고 등교하는 학생이 보였다.

 

    "얘야, 이리와서 좀 서 있어라."

 

    학주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정중했다. 정말 착하게 보이는 학생이 당돌하게 말을 했다.

 

    "아 왜 저부터 잡으시는 거에요?"

 

     학주는 잠시 생각을 하고는 이렇게 말을 한다.

 

    "너부터 잡아서 미안하다. 안 잡을 테니 교복은 좀 바로 해서 잘 입어라." 그리고는 학생을 보내주었다. 학생은 상당히 특수한 행운에, "선생님 교복 바로 입을께요"라고 말하고는, 웃으며 교실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 다음에 오는 복장 불량의 학생이 교문에 섰다. 교문에 서게 된 그 아이는 방금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다.

 

    학생들이 모두 등교하고 교무실로 들어온 학주는 아침에 있었던 일을 부서 선생님들에게 이야기를 한다. 누구는 웃고, 누구는 그러면 안되는 데라고 생각한다. 

 

    내 교사경력이 12년인데, 그 12년을 모두 다 생활지도부에서 보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 그리고 그런 우리 부장님의 방식이 어떤지에 대해서 잠시 생각을 해보았다.  각각의 경우를 따져보자.

 

    자기부터 잡는다고 항변하는 학생을 혼내는 경우. 학생은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 반성할 확률은 얼마 안된다. 단지 운 나쁘게 걸렸고, 그래서 짜증난다는 식으로 결론이 날 것이다. 이럴 경우 교육적인 효과는 거의 기대하기 힘들고, 그냥 인간 대 인간의 감정 싸움을 끝나버릴 공산이 크다. 잡힌 아이도 야단치는 선생도 얻는 것 없이 기분만 나쁘게 된다. 그것도 아침부터.

 

   자기부터 잡는다고 항변하는 학생을 보내는 경우. 학생은 "재수!"를 외치며 기분좋게 간다. 이때, 학생의 두가지 반응을 보이게 된다. 잘못을 돌아보거나, 그냥 무심히 지나가거나.

 

   물론 그냥 무심히 지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최소한 심정적으로 지도한 선생님에 대한 반감을 갖지는 않는다. 다음 번에 또 걸릴 경우 다시 항변할 확률은 낮아진다. 만약 또 그런다면 그놈은 정말 따끔하게 지도해야 하겠지만, 그러지 않을 것이라 믿고 싶다.

 

    스스로 잘못을 돌아볼 수도 있다. 이렇게 된다면 학생을 보낸 것이 최선의 선택이 된다. 기분도 좋고 자신도 돌아보고. 물론 확률적으로 그렇게 될 가능성은 높지는 않다. 하지만 교육이 그런 것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조금이라도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그렇게 아이들을 대하는 것 말이다.  

 

    우연히 그 학생을 알게 되어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수줍게 고개를 숙이며 미안해하였다. "이제 복장 바로 할 수 밖에 없겠네?"라고 말하였더니, 자그마하게 "예"라고 대답을 한다. 기특한 놈!!^^

 

    학생지도를 하다보면 참 다양한 학생들을 만나게 된다. 영원히 아이들은 교문에서 선생을 불편해 할 것이고, 선생은 그럼에도 교문을 지킬 것이다. 아이들은 3년 다니면 끝이지만, 나는 20년도 넘게 다녀야 한다. 그러니 '어떻게 하면 서로 기분이 나쁘지 않으면서도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을까'하는 고민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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