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든』, 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은행나무, 2011.
『월든』을 꼭 읽어야만 할 것 같았습니다. 1달 가까운 시간에 걸쳐서 가급적 천천히 읽었습니다. ‘월든’은 작가 소로우가 홀로 2년 남짓한 시간을 보냈던 호수의 이름입니다. 『월든』에는 그 당시의 소로우의 육체적 정신적 활동이 쓰여 있습니다. 소로우는 오로지 혼자서 모든 것을 해내었습니다. 집을 짓고, 농사를 짓고, 물고기를 잡고, 산책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썼습니다.
전에 법정 스님의 『홀로 사는 즐거움』을 읽었습니다. 정용주 작가의 『나는, 꼭 행복해야하는가』는 읽었습니다. 두 책 모두 산 속에서 홀로 사는 기쁨을 써놓은 것입니다. 법정스님이 선정한 필독서 50선에 『월든』을 포함되어 있습니다. 법정스님은 『월든』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정용주 작가의 『월든』 대한 언급은 본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월든』의 영향을 상당히 받지 않았나하고 생각해봅니다.
소로우는 동서양의 고전을 즐겨 읽었습니다. 『월든』에는 『논어』나 『맹자』의 글귀가 자주 인용됩니다. 한문학을 전공한 나는 차라리 반갑기조차 하였습니다. 브라만교의 경전과 그리스의 고전에서도 많은 구절을 인용합니다. 인용은 그 사람의 박학을 증명합니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라 생각합니다. 작가가 가장 감명 깊게 읽은 내용이 인용이 됩니다. 작가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친 내용이 인용이 됩니다. 인용을 통해 우리는 그 사람의 정신적 지향을 짐작할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이 인용이 독자에게 주는 참 가치라 생각합니다.
이 책이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고 합니다. 이는 단지 물가에서 자급자족하고 살았기 때문은 아닙니다. 물가에서의 삶은 소로우 자신의 사상을 직접 실험하기 위한 실천이었습니다. 『월든』을 ‘살아보니 이렇더라’는 내용을 담은 책이라 말하면 온당치 못합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최선이다 싶어서, 이렇게 살아보니, 이러저러 하더라’라는 내용이 담긴 책이라 말하는 것이 좀 더 나을 듯합니다.
『월든』을 읽으면서 소로우와 법정 스님의 모습이 많이 겹쳐졌습니다.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는 것이 공통되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의식주를 직접 마련하는 데서는 어릴 적 소꿉놀이하는 기분이 들어 제가 먼저 즐거웠습니다. 숲 속의 적막 속에서 산책하고 독서하고 글을 읽는 데서는 요란하지 않은 즐거움에 대한 대리만족을 느꼈습니다.
집은 더위와 추위를 가려주면 그뿐입니다. 음식은 허기를 달래주면 그 뿐입니다. 옷은 가려주고 따뜻하게 해주면 그만입니다. 그것이 이 책의 교훈입니다. 너무도 당연한 교훈입니다만, 오늘의 현실은 그 당연함을 이상함으로 치부합니다.
집과 음식과 옷이 우리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버린지 오래입니다. 우리는 그 판단의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일하고 있습니다. 고귀한 영혼을 가꾸는 일은 부차적인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산다는 것의 본질을 다시금 돌아봅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몇 가지 욕망이 생겼습니다. 지리산 건축학교란 곳에 가서 집 짓는 것을 배우고 싶습니다. 베란다에라도 작은 텃밭을 만들고 싶습니다. 다시는 옷을 사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집사람이 펄쩍 뛸 일들입니다. 그래서 아직은 생각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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