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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으로 아들과 손자를 잃은 노파의 최후,[임진강]

독서

by 빈배93 2011. 12. 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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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1962년 작),『정통한국 문학대계』, 유주현, 어문각, 1994.

 

    나는 20살이던 해 입대를 했다. 군시절하면 누구나 떠올리게 되는 혹독한 훈련과 근무가 나는 별로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배치받은 자대는 임진강가의 절벽 위에 위치한 수색중대였다. 부대 막사와 임진강의 거리는 딱 1미터였다.  남들과 달리 유독 나의 뇌리에 강하게 각인되어있는 것은 부대 막사에 앉아서 바라본 저물녘의 임진강과 갈대가 무성했던 절벽의 모습이다. 26개월을 임진강의 상류와 하류를 오가며 근무를 한 내가 「임진강」이라는 제목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연평도 포격사건이 일어난지 꽤나 시간이 흘렀다. 그 당시 이런 생각을 잠시 했었다. '왜 그 위험한 곳에서 떠나지 않고 사는 거지?' 누구는 북에 있는 고향을 보기 위해 산다고 했고, 누구는 먹고 살려다보니 그렇다고 말했다. 소설「임진강」에는 그 사람들의 애환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고, 소설의 대사들은 그들을 말을 대신하고 있었다.

 

    「임진강」의 줄거리는 이렇다. 땔감이 늘 부족한 임진강 가에 사는 덕수는 땔감 대신 갈대를 베러 얼어있는 임진강을 건넌다. 임진강을 건너는 것은 금지된 일임에도, 얼어죽지 않기 위해선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마침 근무를 서고 있던 미군 병사에게 총을 맞고 죽는다. 남편을 잃은 아내는 장례식 날에 결국 유산을 하고, 아들과 손자를 한꺼번에 잃은 어머니는 망연자실한 끝에 서낭당 소나무에 목을 메어 죽는다.

 

    어머니는 아들의 죽음이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일진과 아홉수의 탓으로 돌린다.

 

"내가 올해 아홉수라우." 아홉수라는 당신의 나이를 차라리 탓했다. 노파는 쉰아홉이라 했다.(중략) 고드름 방에서 에미가 떤다구…… 이웃집 신서방이 와서 가자구만 안했더라두 그날의 일진은 모면했을 테지만……. 어머니는 아들이 죽은 이유를 아들 자신에게 허물할 줄 몰랐다. 그날의 일진日辰과 어미의 나이에다 탓을 둘망정 죽은 사람 자신에게 죽어야 할 허물이나 죄가 없다고 생각한다."(269쪽)

 

    아내 역시 자신의 박복함 탓으로 돌린다.

 

"다 제 팔자죠, 어머니. 지가 박복해서 이런 일을 당했어요, 어머니."(274쪽)     

 

     얼어죽지 않기 위해 땔감을 구하다 덕수는 죽었다. 이것은 굶어죽지 않기 위해 죽는 거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 " <던져진 위치>에서 <주어진 길>을" 묵묵히 갔던 덕수는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가난한 소시민들에게 '사람은 그 처할 곳을 잘 정해야 한다'는 『택리지』류의 말도 아무 쓸모가 없다. 그들의 삶이란 것이 "<던져진 위치>에서 <주어진 길>을" 갈 수 밖에 없는 삶이 아닌가. 연평도에 지금껏 눌러 살고 있는 그들 역시 동궤의 사연이리라.

 

    "강은 어느 강이나 숱한 전설과 애달픈 사연을 삼킨 채 세월처럼 말없이 흐른다." 임진강은 북에서 시작해 남으로 흘러서 조강이 된 다음, 서해바다로 소멸한다. 그 임진강 속에는 말없이 죽어간 덕수와 덕수의 어머니와 태어나지도 못한 아이가 있고, 수없이 명멸해간 민초들이 있고, 그 끝트머리에 내 젊은 날의 군시절이 묻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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