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경제학 블로그』, 원용찬, 당대, 2006.
자신이 만든 도구의 노예가 된 인간
장자는 기계를 사용하는 것을 극히 혐오하였다. 기계를 사용하는 순간 인간의 마음이 그 기계에 종속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마음을 장자는 기심機心이라고 하였다. 인간이 도구를 계발하지만, 그 도구가 인간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장자는 일찌감치 간파했던 것이다. 인간의 마음을 종속시키는 것이 어디 기계뿐이랴? 인간은 주체적으로 사고한다고 착각하고 있지만, 실상은 말과 관습과 이념과 타인의 생각이라는 굴레에서 한 발짝 벗어나기가 너무나도 힘이 든다.
시장과 경제의 폭력성과 몰인정
나는 원용찬의 책을 읽으며, 우리를 얽매는 또 하나의 굴레를 엿보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시장과 경제학의 폭력성과 몰인정’이었다. 현대 사회가 갈수록 폭력이 만연하고 비인간화 되어 가는 데는, 효율과 합리성만을 중시하는 시장과 경제학의 책임을 상당하다. 시장과 경제학이 기대고 있는 합리성은 이제 그 한계를 드러낼 만큼 드러내었다. 굶주리는 제3세계와 갈수록 팍팍해지는 우리의 삶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인간은 부분적으로 합리적인 동물일 뿐
‘인간은 합리적이 동물이다’라는 명제는 인간의 극히 일부분을 표현한 것일 뿐이다. 합리성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이 어디 한둘인가? 불쌍한 고양이를 데려다 기르는 할머니를 어떻게 합리성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강도를 목숨 걸고 쫓아가 경찰서로 넘기는 용감한 청년을 어떻게 합리성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인간은 부분적으로 합리적인 동물일 뿐이다. 또 합리화하는 동물일 뿐이다. 그래서 '인간은 합리적'이라는 경제학의 가정은 불완전하고, 불완전한 가정으로부터 출발한 경제학 역시 불완전한 것이다.
경제학, 인간을 이해가기 위한 수많은 학문 중의 하나로 돌아가라
원래 경제학은 수많은 학문 중 하나로서 등장했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가 맹위를 떨치자 경제학과 그를 떠받치는 합리성이 유일한 원칙처럼 되어버렸다. 결국 경제는 사회와 문화를 비롯한 대부분의 분야를 좌지우지하는 것이 되어버렸고, 우리의 이성마저 경제원칙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인간을 종합적으로 이해가기 어려워서 분화된 학문은 최종적으로 다시 통합되어야 한다. 기형적으로 커져버린 경제학은 수많은 학문 중의 하나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인간에 대한 이해를 얻을 수 있고, 우리의 사고도 바른 자리를 잡을 수 있다.
경제학의 폭력적 가정
이 책을 보며 내가 무릎을 쳤던 부분이 있다. .경제학의 폭력적인 가정에 대한 것인데, 그 내용은 이렇다. 아무튼 경제학은 그 가정에서부터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니 맹신해서는 안될 듯 하다. 물론 경제학만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자본주의로 인해 거대해진 경제학이기에 특히나 비판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아직도 경제학은 자연이 무한하다는 가정 위에서 경제이론을 전개하고 있다. 땅속의 화석자원을 캐내는 것이 생산활동으로 되기 위해서는 자연이 무한하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하지만 자원이 유한한 상황에서 지하로부터의 채굴행위가 결코 ‘생산’으로 인식될 수는 없다. 그것은 곧 바닥날 쌀독의 뚜껑을 열어 쌀을 꺼내 밥 짓는 행위를 생산이라 얘기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곧이어 끝나버릴 단순한 소비행위인데도 말이다.”
경제학이 우리 삶에 기여한 부분은 크지만, 그 폐해 또한 만만치 않다. 그래서 최근 들어 노장사상과 불교사상, 그리고 일본의 가족 경영등에서 다양한 대안들을 찾고 있다. 그 노력들을 모두 경제학을 다른 학문들과의 대등한 위치로 되돌리려는 노력이 아닐까?
블로그 유목민 원용찬 교수
원용찬 교수는 블로그를 통해 이 책을 엮어내었다. ‘홀로 떠나는 유목민처럼 블로그의 경계선을 여기저기’ 넘나들며 생각을 다듬었다. 블로거인 나로서는 그런 부분이 인상 깊었다. 인간이 아는 것은 유한하고, 모르는 것은 무한하기 때문에 인간은 영원히 무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무지를 벗어나기 위한 폭넓은 독서와 사고는 인간으로서의 의무가 아닌가 한다. 경제학, 책 몇 권을 읽다보니 영 어렵고 이상한 학문만은 아니다.
상상 + 경제학 블로그
[삶을 만드는 책 읽기], 끊임없이 나를 떠올리는 독서 (0) | 2012.02.24 |
---|---|
삶을 사랑한 인디언이 주는 교훈 (0) | 2012.02.23 |
[밥집] '맛'과 '맛집'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 (0) | 2012.02.15 |
[나는 만화에서 철학을 본다], 만화를 철학의 화두로 삼다 (0) | 2012.02.14 |
[슬膝], 가족을 위해서 무릎을 내어놓은 아버지 (0) | 2012.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