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트 에코의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열린책들, 2003.)을 읽고 있다. 「도둑맞은 운전 면허증을 재발급받는 방법」을 읽으며 무릎을 쳤다. 이탈리아는 면허증 재발급 절차가 대단히 복잡했던 모양이다. 때문에 한껏 골탕을 먹은 에코가 이 글을 언론에 실었다. 그로 인해 얼마 지나지 않아 운전 면허증 재발급 절차가 간소화되었다고 한다. ‘아! 이것이 글의 힘이구나.’싶었다.
움베르트 에코와 나는 비교 대상이 되질 못한다. 그럼에도 자신의 생각을 담은 글을 다른 사람에게 읽힐 수 있다는 점에서는 하등 다를 것이 없다. 교육과 관련된 글이 언론과 대안언론 - 여기서 대안언론이란 블로그, 카페,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가리킨다 - 에 난무한다. 그런데 내가 느끼기에 교육 현장의 목소리는 거의 없고, 외부에 있는 사람들의 관념만이 판을 친다. 교육 현장에 있다고 하지만, 난들 무슨 대단한 대안이나 해결책은 없다. 그러나 현장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를 가지리라 생각한다.
작년이었던가? 교육청으로부터 업무간소화의 일환으로 공문서 줄이기와 관련된 공문이 왔다. 당시 담당 선생님께서 이런 푸념을 하셨다. “어휴! 이거 모니터로 보면 눈이 아파서 결국 다 출력해야 되는데, 이 공문이 수백 장이야. 공문서 줄이기는 무슨…….” 꽤나 시간이 흘렀지만, 나의 체감으로는 오히려 공문서가 늘었으면 늘었지, 결코 줄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관료 조직은 시간이 갈수록 비대화해지면서 효율성이 저하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 관료 조직이 커지면 모든 일이 원활하게 돌아갈 것이라는 생각은 마치 컴퓨터가 발전하면 우리의 일이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과 다름 없다. 혹자는 ‘컴퓨터가 우리 삶을 편하게 해준 부분도 있지 않느냐’고 말한다. 그러나 그 말이 낚시 바늘을 문 물고기가 ‘그래도 지렁이는 맛있지 않느냐’고 말하는 것과 다를 것이 무엇이겠는가? 교육청의 학교에 대한 압박은 해가 갈수록 늘어만 간다. 이를 통해 얻을 것은 '관료 조직의 폐해에 대한 정확한 이해' 뿐이라면 너무 편파적일까?
장자는 국가의 간섭이 최소화된 소국과민론小國寡民論-국가의 영토와 국민의 수는 작을수록 그리고 적을수록 좋다는 논리-을 주장했다. 오늘날의 현실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분명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관료 조직의 간섭의 최소화’로 나는 소국과민을 읽는다. 곡식는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라듯이, 학생 역시 선생님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 그러나 작금의 교육현장은 어떠한가? 교실로 자주 자주 아이들을 보러가야 하건만, 엄청나게 내려오는 교육청의 공문에, 선생님의 발자국 소리를 들려주기가 어렵다. 학교폭력의 대부분은 교실에서 발생한다. 교실에 선생님이 자주 들르기만 해도 예방 효과가 충분하건만, 엄청나게 쏟아지는 학교 폭력 관련 공문이 이를 심각하게 방해한다. 그래도 시간을 내어서 올라가긴 해야겠지만, 이 무슨 아이러니란 말인가?
교육청은 제발 일을 벌이지 말고 가만 있었으면 좋겠다. 공문도 꼭 필요한 것만 보냈으면 한다. 교사가 편하자고 하는 소리가 아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발자국 소리를 들려주기 위함이다. 공문을 과하게 생산하는 사람에 대한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는 안 만드는지 묻고 싶다. 금품수수의 해害보다, 공문 남발이 주는 피해가 더 광범위하고 심각하다고 말하고 싶다.
+) 이 글이 널리 읽혀지고 이슈가 된다면, 아마 이런 제목의 공문들이 또 날아올 듯하다.
1) 교사들의 SNS 사용 실태 조사 2) 교육청에 대한 비판 자제 협조 요청 3) 업무시간 내 업무 외 컴퓨터 사용 자제 협조 요청 4) 언론이나 대안언론에 글을 실은 사례 조사
+) 공문으로 사람 잡은 사례가 얼마나 될까? 조사해보지는 않았지만, 공문에 시달리는 선생님들이 이런 말을 자주 한다. "공문 처리 때문에 과로사가 몇 건 일어나서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야지, 공문이 줄어들거야. 물론 그럴 가능성도 별로 없지만. 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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