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맷길 700리 5일 째. 토요일과 일요일은 쉬었다. 쉬고 싶어서 쉰 건 아니고, 아이들 본다고 쉬어야 했다. 매일 것는 것도 좀 무리인 것 같아서, 주말을 쉬는데는 불만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체력 비축의 차원에서. 5일 째 걸은 코스는 이렇다. "1500 이기대 입구 하차 - 1520 동생말 - 1540 어울마당 - 1610 농바위 - 1640 오륙도 선착장 도착" 5.2km를 1시간 40분 동안 걸었다. 코스가 집에서 멀어서, 버스타고 오가는 시간이 걷는 시간의 거의 두 배였다. 그래도 어쩌랴? 할 수 없지, 뭐……. 5일간 누적 거리는 57.9km이고, 누적 시간은 14시간 35분이다. 5일 연속 폭염주의보가 내린 상태였다.
△ 이기대 해안 산책로 풍경(1)
'이기대二妓臺'라는 명칭은 임진왜란 때 두 기생이 왜장을 껴안고 자살했기 때문에 붙었다는 설이 있다. '농바위'는 바구니를 쌓아놓은 형상인데, 해녀들이 물질을 할 때 서로 만나거나 위치를 설명하는 기준으로 이용했다는 설이 있다. 실제 이기대 해안 산책로에는 해녀막이 있고, 지금도 해녀들이 수산물을 채취해서 판매하고 있다. '오륙도五六島'는 6개의 작은 섬을 합해서 부르는 말인데, 썰물 때는 5개 밀물 때는 6개로 보여서 붙은 이름이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나라의 동해와 남해가 이 오륙도를 기준으로 해서 나누어진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지난 5일간은 동해를 따라난 길을 걸은 것이고, 앞으로는 남해를 따라 난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 이기대 해안 산책로 풍경(2)
여행을 하다보면 특이한 지명을 접하게 된다. 그냥 넘어가면 아무런 소득이 없지만, 그 이유를 조사해보면 여행의 의미가 풍성해진다. 왜 그럴까? 지명은 지역민들의 오랜 삶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포浦'로 끝나는 곳은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바다와 강으로 인해 먹고 사는 이들의 터전이다. '∼티·치峙'로 끝나는 곳은 높은 고개에 위치해 있어서, 그 지역민들만의 특색을 지니고 있다. 지명은 지역민들의 삶의 기준이 되고, 지역성을 드러낸다. 오늘날 '∼포浦'로 끝나는 곳 중에 운송이나 어업이 지역민의 생업으로써 가치가 없어진 곳이 꽤나 있다. 대신 그곳들이 유명 관광지가 되어 지역민들을 먹여 살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지명으로 대표되는 지역성이 다시 역으로 지역민의 삶을 재규정한 경우이다.
△ 이기대 해안 산책로 풍경(3)
지역의 본질은 지명에 반영된다. 따라서 한 지역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지명에 주목해야 한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전래되어 온 지명을 잘 보존하고 활용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부산 지하철 4호선에서 '아랫반송', '윗반송'이라는 고유한 지역명 대신에 '무슨 대학' '무슨 대학'으로 붙여놓은 역명은 아주 잘못된 명명이라 할 수 있겠다. 생긴지 몇 십년도 되지 않은 대학이 어떻게 한 지역을 대표하는 명칭으로 쓰인단 말인가?
△ 농바위와 오륙도
지명과 지역성이 땔레야 땔 수 없는 관계이듯, 인명人名과 인성人性 역시 땔래야 땔 수 없는 관계일테다. 사람이 죽고 나면, 후세 사람들은 그 사람의 이름을 통해 그의 인성을 떠올리게 된다. 물론 기억조차 안되는 이름이 대부분이지만……. 자신의 이름 석 자! 후세에 아름다운 이름으로 남기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는다면, 선한 삶을 살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악한 삶을 막아내는데는 유용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 오륙도
폭염 속에서도 코스모스는 제 이름값을 하느라 꽃을 활짝 피웠고, 그 너머로 보이는 오륙도도 다섯인양 여섯인양 의연히 서 있다. 빈배야! 빈배야! 너는 어떤 이름으로 남고 싶으냐? 그 남고 싶은 이름을 위해 너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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