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 남구 용호동 바닷가에 가면 오륙도에서 머지 않은 곳에 신선대神仙臺가 있다. 자그마한 공원으로 조성이 되어 있는데, 녹음이 우거진 1km 남짓한 산책로가 참 시원하다. 신선대 입구에서 신선대에 이르는 길은 경사가 완만해서 걷기가 참 좋다. 신선대에 올라서면 부산항의 파노라마가 한눈에 들어오는데, 장관이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 신선대는 신라말에 최치원이 신선이 되어서 유람한 곳이라고 한다. 안내판에 의하면, '봉우리에 있는 큰 바위에는 신선의 발자국과 신선이 탄 백마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고 하던데, 나는 찾지 못했다. 풍화작용으로 지워져 버렸나…….
△ 신선대에서 바라본 조도·영도·부산항
태종대·해운대·이기대·동대·신선대……. 부산에는 특히나 '대臺'가 많다. 그 대에 올라서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아름다운 경관이 두 눈에 가득하다. '대臺' 자체는 그다지 볼 것이 없다. '대臺'가 명승가 되는 까닭은 '대臺'가 제공하는 경관에 있다. 어떤 환경적 변화로 인하여 '대臺'가 더이상 경관을 제공하지 못하면, '대臺'는 그 생명성이 화석화된다. '누정樓亭' 역시 '대臺'와 거의 같은 성격을 갖고 있으니, 저 유명한 압구정이 그런 예가 되겠다.
최근 '대臺'와 '누정樓亭'의 생명성은 크게 위협 받고 있다. 그 위협의 주체는 저 혼자 조망의 권리를 누리려는 고층건물들이다. 건축 자본이 저 혼자 조망의 권리를 독차지 하려 욕심을 부린다. 그럴 수록 건물은 높아져 가고, '대臺'와 '누정樓亭'은 죽어간다. 부산의 길고 긴 해안의 대부분을 이미 고층 아파트들이 독식해버렸다. 영화를 보는데 앞에 머리 큰 사람이 앉아 있어 스크린이 잘 보이지 않는 것 처럼 불편하기 짝이 없다. 바다를 보려면 그 아파트를 돌아서 들어가야한다. 안타깝고 신경질이 난다.
부산의 '대臺' 들은 말없이 해안가에 서있다. 저를 밟고 아래를 내려다보는 사람에게 기꺼이 어깨를 내어준다. 덕분에 그 대에 올라선 사람들은 세상을 널리 멀리 바라본다. 어떤 사람은 그 대에 올라서서 지도를 그렸고, 어떤 사람은 그 대에 올라서서 자연의 광대함을 배웠고, 어떤 사람은 그 대에 올라서서 인간의 왜소함을 깨달았다. 그래도 '대臺'는 잘난 체하지 않고 말없이 그 자리를 천 년 만 년 지키고 있다. 대는 결코 외롭지 않다. 발 아래 가득한 풍경들이 언제나 자신을 포근히 감싸고 있으니.
나는 '대臺'를 보며 허준의 스승이었던 유의태 선생을 떠올린다. 스승으로서 안목과 식견을 높이기 위한 부지런한 노력. 그 안목과 식견을 기꺼이 제자들에게 빌려주고, 죽은 몸뚱이마저 내어주는 마음. 그렇게 해서 제자가 잘 되어도 잘난 체 하지 않고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무거움. 그리고 세상 사람들의 '대臺'처럼 살려던 선생에 대한 기억. 알아주지 않아도, 홀로 섭섭해하지 않는 의연함. 그런 덕성들을 떠올려본다.
'승대견무제乘臺見無際하니 만안독허주滿眼獨虛舟!'(대에 올라 일망무제를 바라보니, 그 풍경 눈에 가득한데 빈배 홀로 떠있네.) 시가 되는지 모르겠으나, 이런 시를 한 구절 지어 읊조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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